등록 : 2015.06.18 18:42
수정 : 2015.06.18 18:42
요즘 중국 베이징 왕징 바닥은 뒤숭숭하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탓이다. 베이징 동북쪽에 위치한 왕징은 한국인 수만명이 살고 있는 코리아타운이다. 한국에서 날로 창궐하고 있는 메르스는 베이징 교민 사회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당장 여름방학을 앞두고 한국을 다녀올 계획을 세운 부모들은 머리가 복잡하다. 한 학부모는 “오랜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아이들 병원 진료도 받고 오려 했는데 고민이다”라고 했다. 자녀들을 둔 베이징 교민들에게 방학은 정기검진 기간이다. 학업 탓도 있지만 미덥지 못한 중국의 의료 수준과 터무니없이 비싼 진료비 탓에 부모들은 방학을 이용해 한국에 가서 치과 치료나 예방접종, 건강검진 등 미뤄둔 ‘병원 숙제’를 처리한다. 외국인들에게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까닭에 중국 병원들은 한번 찾아가면 기본 1000위안(18만원)가량이 나온다. “(병에) 걸렸다 싶으면 고민하지 말고 비행기를 타고 한국 병원을 가라. 그게 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중국 학교에서는 자기네 학교에 다니는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번 여름방학 때 한국에 다녀올 것인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당연한 대비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잠재적 메르스 위험 요소’로 차별하는 듯해 마음이 개운치 않다. 초등학생들은 “방학에 한국 가면 안 된대. 갔다가 다시 못 들어온대”라며 저희들끼리 수군댄다. 중국인들과 일로 접촉해야 하는 주재원들도 “중국 사람들이 가까이하길 꺼려하는 인상을 받는다”고 한다.
다수의 교민들은 인터넷과 위성방송을 보면서 하루빨리 메르스가 잠잠해지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의 대응을 보고 있자면 답답함을 감출 수 없다. 정부 당국의 발표를 농락하기라도 하듯 계속 2, 3, 4차 감염자들이 속출한다. 늑장 대응의 자업자득 탓에 방미를 취소한 대통령은 뾰족수가 없어 뵌다. 동대문시장에서 만난 중국 관광객에게 “한국이 안전하다고 알려달라”고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세월호 대응 때와 판박이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괴담이나 잘못된 정보를 신속히 바로잡으라”고 다그친다. 경찰과 검찰에 천리를 간다는 발 없는 말을 잡으라 한다. 발 없는 말은 쉬이 잡히지 않는다. 정보를 틀어쥔 무능력한 ‘숙주’는 유언비어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데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사회적 인지부조화의 산물이 유언비어다.
한국과 왕래가 가장 잦은 중국의 대응은 ‘아직 한 수 아래’라는 근거 없는 우리네 우월의식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병은 자랑하라’는 옛말처럼 공산당 일당독재의 권위주의 체제 중국은 투명하게 메르스 의심 환자가 격리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을 바로 공개했다. 중국으로 건너온 한국인 메르스 환자가 머무는 병원이 광둥성 후이저우시중심인민병원이라고 알렸다. 홍콩 위생당국은 ‘칭이 지하철역→프린세스 마거릿 병원’, ‘침사추이 퍼시픽 센터병원→퀸엘리자베스 병원’ 등으로 메르스 의심 환자들의 동선까지 바로 공개했다. 한국이 “국민의 과도한 불안 확산 방지”를 구실로 병원 공개를 두고 우왕좌왕할 때였다. 정보를 공유한 중국과 정보를 틀어쥐고 입단속을 한 한국의 결과는 모두 아는 바와 같다. 세계보건기구(WHO) 평가단은 “위험정보 소통 강화가 핵심”이라며 정부에 메르스와 관련한 최신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하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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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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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인들은 “오지 말고 그냥 거기 눌러살라”고 한탄 섞인 농을 던진다. 능력이 달리는 정부는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 살고 있는 국민에게도 폐를 끼친다는 걸 절감하는 요즘이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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