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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20 18:39 수정 : 2015.08.20 21:59

파도에 유리병 두 개가 떠다닌다. 병 안엔 수십개의 자그마한 두루마리 편지들이 빼곡히 차 있다. 밀물 탓인지 병은 좀체 바다 쪽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유리병 편지를 주우려는 순간 한 청년이 머쓱한 표정으로 다가선다.

“이거 저희 거예요. 저편으로 보내려는 건데….”

청년은 병을 주워 들고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저편엔 대만 진먼섬(금문도)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중국 청년은 유리병 편지를 중국 남동부 푸젠성 샤먼 바닷가에서 진먼섬으로 보내려던 참이었던 모양이다. 일찌감치 삼통(三通: 항공기·선박·우편의 왕래)이 허용된 터라 청년은 재미 삼아 유리병 편지를 띄웠던 것 같다.

샤먼 해변가는 변경이다. 대만 땅인 진먼섬과는 불과 6㎞가량 떨어져 있다. 해수욕장이 펼쳐진 바닷가는 한가롭기 그지없다. 잘 정비된 해변 순환도로에는 대왕야자나무들이 습기를 머금은 열풍에 잎을 내맡긴 채 줄지어 서 있다. 열대의 상징인 붉은 하와이무궁화와 노란 알라만다, 하얀 플루메리아 꽃도 한창이다. 중국에서도 여름 휴양지로 손꼽히는 이곳 해변에서 사람들은 막바지 여름을 즐기고 있다. 아이들은 바위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바지락과 게, 새우를 잡느라 목 뒤가 까맣게 타는 줄도 모른다. 미처 수영복을 준비하지 못한 한 청년 무리는 망설임도 없이 팬티 바람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환호성을 지른다.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그저 동남아시아의 한 휴양지쯤으로 여겼을 것이다.

여름휴가를 온 한국인 관광객을 해변가에 내려놓은 택시 기사는 해변 언덕을 가리킨다. 언덕엔 족히 가로세로가 7~8m는 될 법한 거대한 입간판 8개가 서 있다. 대만 진먼섬을 향한 간판엔 ‘일국양제 통일중국’(一國兩制 統一中國)이라고 쓰여 있다. 하나의 중국 안에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공존시키자는 뜻으로 중국의 대만 통일과 홍콩 통치의 기본 원칙이다. 택시 기사는 “진먼섬에서도 선명히 보입니다”라고 했다. 변경임을 일깨워주는 표지이다. 그러고 보니 모래사장 앞엔 또 하나의 상징이 눈에 들어온다. 돌로 만든 조각상이다. 큰 두 개의 손이 작은 두 개의 손을 감싸안은 모양이다. 큰 손은 중국, 작은 손은 대만을 상징하는데, 바로 중국이 대만을 껴안아 함께 통일을 이룬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중국과 대만이 대치하고 있는 변경임을 일깨워주는 풍경은 이 두 가지가 전부다. 그 흔한 철조망이나 해안 초소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바닷가 바위 사이에 세워진 입간판에도 “월경 금지”나 “귀순 환영” 따위의 구호는 없다. 그저 “익사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니 주의하라”고 할 뿐이다.

사실 30여년 전만 해도 이곳은 포연이 멈추지 않았던 곳이다. 특히, 1958년엔 중국군이 이곳에서 달포 동안 47만여발의 포탄을 동쪽을 향해 퍼부었다. 이른바 ‘진먼섬 포격’이다. 대만도 샤먼을 포격했다. 그러나 개혁개방 뒤 중국은 샤먼을 제일 먼저 경제특구에 포함시켜 대만 자본을 유치했다. 이제 포탄이 오가던 바다엔 관광선이 다니고 해마다 양안 수영대회가 열린다.

휴가를 마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팽팽한 남북 긴장 소식으로 그득하다. 비무장지대에 북한이 목함지뢰를 매설해 폭발한 사건이 폭염의 한반도를 달궜다. 2004년 이후 중단된 남북의 확성기 방송은 11년 만에 재개되더니 급기야 20일엔 서부 전선에서 상호 포격전까지 벌어졌다. 대조적인 풍경이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독일의 한 수필가는 휴가의 마지막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서글픈 휴가의 마지막날, 한 스푼의 서글픔이 더 얹어졌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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