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특파원 “김 선생, 당신이 오늘 우리들의 스타가 돼줘야겠어요. 외신기자 초청행사인데, 대만 기자 몇명을 빼면 ‘진짜 외국’에서 온 기자는 둘뿐이네요.”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개막을 며칠 앞두고 프레스센터 주최 행사에서 만난 중국 기자는, 멋쩍은 듯 자꾸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기자들이 어림잡아 십수명은 족히 돼 보였다. 하지만 행사에 참가한 외신기자들은 없고, 대부분 외신기자들을 취재하러 온 중국 기자들이었다. 어째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중국에 온 뒤로 흔히 겪는 일이다. 무슨 행사가 있다고 해서 취재하러 가면, 현지 매체 기자에게 덥석 붙잡혀 취재를 당하기가 일쑤다. 그들의 질문은 일관됐다. “어떤 내용을 취재하러 오셨나요?” “이번 행사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받고 있나요?” 그러나 난감하다. 한번은 지방의 개발 공사 현장에 갔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기다리던 기자들이 나를 붙잡았다. 아침 첫 일정이라 아무 답변도 할 수가 없어 정중히 사양했지만, 속으론 ‘내가 취재하러 왔지, 취재당하러 왔나’ 하고 부글댔다. 어떤 외신기자는 “같은 업계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라며 자신은 적극 응한다는데, 이래저래 선뜻 그러기가 힘들다. 한국에서도 ‘외신 반응’은 자주 나오는 뉴스 아이템이지만, 중국은 외신 보도나 외신기자의 모습이 과하게 강조된다.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올해 일대일로 정상회의 같은 국제 행사나, 해마다 3월에 열리는 양회와 이번 당대회 같은 국내 정치 행사를 다루는 관영매체 보도를 보면, 프레스센터 현황과 ‘외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보도가 가장 중요한 수준에서 다뤄진다. 더불어 외신기자 인터뷰도 빠지지 않는다. 왜일까? 중국인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20대 구직자 ㄱ은 “면접을 보면서 면접관에게 ‘제 인상이 어떤가요’ 하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공무원 ㄴ은 “중국이 급속한 경제 성장과 사회 변화를 겪으면서, 현실에 대한 외국의 시선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취재·보도의 자유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란 해석도 나왔다. 중국 기자 ㄷ은 “다른 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그런 거라도 하는 거지”라며 웃었다. 각종 행사를 다루더라도, 틀에 박힌 당국의 입장 외에 민감한 내용들은 보도하기가 힘든 제약이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그렇게 한 외신기자들 인터뷰가 과연 공정하게 보도되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있었다. 중화권 매체 기자 ㄹ은 “회사 규정에 따라 중국 매체, 특히 관영매체 인터뷰는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무슨 말을 해도 자기들 입맛에 맞는 내용만 보도하면서 필요한 정당성을 확보하려 들기 때문이다. 별 의미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날 하는 수 없이 인터뷰에 응하며 ‘사드’ ‘북핵’ 같은 민감한 단어를 피하고 “최근 한-중 사이에 생긴 갈등” 같은 표현으로 돌려말하며 한-중 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기대와 소회를 나름대로 밝혔다. 그러나 나중에 보도된 것은 “시간이 되는 대로 순수하게 중국의 매력을 다루고 싶다”는 ‘친중 기자’의 한마디였다. 사전에 “혹시 원하는 답변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나를 인터뷰했던 기자는 손사래를 쳤지만, 아마도 그가 속마음으로 바랐던 게 그런 답이 아니었나 싶다. 중국의 성과와 성공을 과시하면서 그들의 길이 맞다고 수긍하고 존중한다는 제3자의 ‘객관적’ 답변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기자들은 오늘도 어딘가 외국을, 외국인을 쫓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점점 할 말이 줄어들고 있다. oscar@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점점 할 말이 사라져 간다 / 김외현 |
베이징 특파원 “김 선생, 당신이 오늘 우리들의 스타가 돼줘야겠어요. 외신기자 초청행사인데, 대만 기자 몇명을 빼면 ‘진짜 외국’에서 온 기자는 둘뿐이네요.”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개막을 며칠 앞두고 프레스센터 주최 행사에서 만난 중국 기자는, 멋쩍은 듯 자꾸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기자들이 어림잡아 십수명은 족히 돼 보였다. 하지만 행사에 참가한 외신기자들은 없고, 대부분 외신기자들을 취재하러 온 중국 기자들이었다. 어째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중국에 온 뒤로 흔히 겪는 일이다. 무슨 행사가 있다고 해서 취재하러 가면, 현지 매체 기자에게 덥석 붙잡혀 취재를 당하기가 일쑤다. 그들의 질문은 일관됐다. “어떤 내용을 취재하러 오셨나요?” “이번 행사에 대해서 어떤 인상을 받고 있나요?” 그러나 난감하다. 한번은 지방의 개발 공사 현장에 갔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기다리던 기자들이 나를 붙잡았다. 아침 첫 일정이라 아무 답변도 할 수가 없어 정중히 사양했지만, 속으론 ‘내가 취재하러 왔지, 취재당하러 왔나’ 하고 부글댔다. 어떤 외신기자는 “같은 업계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라며 자신은 적극 응한다는데, 이래저래 선뜻 그러기가 힘들다. 한국에서도 ‘외신 반응’은 자주 나오는 뉴스 아이템이지만, 중국은 외신 보도나 외신기자의 모습이 과하게 강조된다.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올해 일대일로 정상회의 같은 국제 행사나, 해마다 3월에 열리는 양회와 이번 당대회 같은 국내 정치 행사를 다루는 관영매체 보도를 보면, 프레스센터 현황과 ‘외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보도가 가장 중요한 수준에서 다뤄진다. 더불어 외신기자 인터뷰도 빠지지 않는다. 왜일까? 중국인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20대 구직자 ㄱ은 “면접을 보면서 면접관에게 ‘제 인상이 어떤가요’ 하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공무원 ㄴ은 “중국이 급속한 경제 성장과 사회 변화를 겪으면서, 현실에 대한 외국의 시선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취재·보도의 자유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란 해석도 나왔다. 중국 기자 ㄷ은 “다른 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그런 거라도 하는 거지”라며 웃었다. 각종 행사를 다루더라도, 틀에 박힌 당국의 입장 외에 민감한 내용들은 보도하기가 힘든 제약이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그렇게 한 외신기자들 인터뷰가 과연 공정하게 보도되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있었다. 중화권 매체 기자 ㄹ은 “회사 규정에 따라 중국 매체, 특히 관영매체 인터뷰는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무슨 말을 해도 자기들 입맛에 맞는 내용만 보도하면서 필요한 정당성을 확보하려 들기 때문이다. 별 의미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날 하는 수 없이 인터뷰에 응하며 ‘사드’ ‘북핵’ 같은 민감한 단어를 피하고 “최근 한-중 사이에 생긴 갈등” 같은 표현으로 돌려말하며 한-중 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기대와 소회를 나름대로 밝혔다. 그러나 나중에 보도된 것은 “시간이 되는 대로 순수하게 중국의 매력을 다루고 싶다”는 ‘친중 기자’의 한마디였다. 사전에 “혹시 원하는 답변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나를 인터뷰했던 기자는 손사래를 쳤지만, 아마도 그가 속마음으로 바랐던 게 그런 답이 아니었나 싶다. 중국의 성과와 성공을 과시하면서 그들의 길이 맞다고 수긍하고 존중한다는 제3자의 ‘객관적’ 답변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기자들은 오늘도 어딘가 외국을, 외국인을 쫓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점점 할 말이 줄어들고 있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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