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특파원 “조 기자도 도쿄올림픽까지 준비해둬야 하지 않겠어요?” 몇 달 전 만난 동포 언론인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화제로 올렸다.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 분위기 띄우기에 열심인 것은 알고 있지만 2년 넘게 남은 도쿄올림픽 준비라니 조금 의아스러웠다. “무슨 준비를 말씀하시는 거죠?”라고 물으니 상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면 일본도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어요?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까지 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쿄올림픽 개막식 참석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솔직히 조금 멍했다.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기대하는 동포들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느낌은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나란히 호텔 정원을 걷는 장면이 전세계 미디어를 통해서 퍼져나간 지금도 많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일본이 북한에 적극적으로 정상회담 의사를 타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떤 상상보다 극적인 것이 현실 자체라는 말도 다시금 곱씹게 된다. 3월에 북-미 정상회담 개최 계획이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아베 신조 정부는 북한과는 이야기할 가치조차 없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아베 총리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 “북한에 최대한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북-미 정상회담 계획 발표 뒤부터 아베 총리의 말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먼저 ‘평양선언’은 아직 유효하다는 말을 던졌다. 평양선언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 선언으로, 국교 정상화를 지향하고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은 북한에 경제협력을 한다는 내용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초에는 <후지 티브이>에 출연해 “북-일 정상회담이 실현되면 좋겠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미, 남북 정상회담만 하면 된다고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6일에는 <요미우리 티브이>에 출연해 “북한과 신뢰 관계를 조성해 가고 싶다”며 “상호 불신이라는 껍데기를 깨고 한걸음 전진하고 싶다. 나의 결의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18일 참의원 결산위원회에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북한과 상호 신뢰를 만들어 해결에 주력하고 싶다”며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북-미 정상회담을 실현한 지도력이 있다”고도 말했다. 대북 강경론을 최대한 활용해온 아베 총리가 이렇게 북한 지도자를 평가하는 발언을 했다는 점은 초현실적이라는 느낌까지 든다. 물론 북-일 정상회담에 의욕을 보이는 아베 총리의 발언에는 국내 정치를 고려한 보여주기 성격이 있어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정권의 우선 과제로 삼아왔기 때문에, 한반도 대화 분위기를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일본 내에서 일고 있는 “일본은 모기장 밖에 있다”(소외되고 있다)는 우려도 불식할 필요가 있다. 아베 정부의 급변은 힘과 이익에 좌우되는 국제정치의 냉정함을 보여준다. 미국의 대북 정책의 방향이 바뀌면 아베 정부의 대북 대화 모색 노력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것이다. 북-미 정상이 만나서 악수를 하는 역사상 최초의 일이 실현됐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냉정하고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garden@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북한과 도쿄올림픽 상상 / 조기원 |
도쿄특파원 “조 기자도 도쿄올림픽까지 준비해둬야 하지 않겠어요?” 몇 달 전 만난 동포 언론인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화제로 올렸다.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 분위기 띄우기에 열심인 것은 알고 있지만 2년 넘게 남은 도쿄올림픽 준비라니 조금 의아스러웠다. “무슨 준비를 말씀하시는 거죠?”라고 물으니 상상하지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면 일본도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어요?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까지 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쿄올림픽 개막식 참석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솔직히 조금 멍했다.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기대하는 동포들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느낌은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나란히 호텔 정원을 걷는 장면이 전세계 미디어를 통해서 퍼져나간 지금도 많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일본이 북한에 적극적으로 정상회담 의사를 타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떤 상상보다 극적인 것이 현실 자체라는 말도 다시금 곱씹게 된다. 3월에 북-미 정상회담 개최 계획이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아베 신조 정부는 북한과는 이야기할 가치조차 없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아베 총리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 “북한에 최대한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북-미 정상회담 계획 발표 뒤부터 아베 총리의 말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먼저 ‘평양선언’은 아직 유효하다는 말을 던졌다. 평양선언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 선언으로, 국교 정상화를 지향하고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은 북한에 경제협력을 한다는 내용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초에는 <후지 티브이>에 출연해 “북-일 정상회담이 실현되면 좋겠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미, 남북 정상회담만 하면 된다고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6일에는 <요미우리 티브이>에 출연해 “북한과 신뢰 관계를 조성해 가고 싶다”며 “상호 불신이라는 껍데기를 깨고 한걸음 전진하고 싶다. 나의 결의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18일 참의원 결산위원회에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북한과 상호 신뢰를 만들어 해결에 주력하고 싶다”며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북-미 정상회담을 실현한 지도력이 있다”고도 말했다. 대북 강경론을 최대한 활용해온 아베 총리가 이렇게 북한 지도자를 평가하는 발언을 했다는 점은 초현실적이라는 느낌까지 든다. 물론 북-일 정상회담에 의욕을 보이는 아베 총리의 발언에는 국내 정치를 고려한 보여주기 성격이 있어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정권의 우선 과제로 삼아왔기 때문에, 한반도 대화 분위기를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일본 내에서 일고 있는 “일본은 모기장 밖에 있다”(소외되고 있다)는 우려도 불식할 필요가 있다. 아베 정부의 급변은 힘과 이익에 좌우되는 국제정치의 냉정함을 보여준다. 미국의 대북 정책의 방향이 바뀌면 아베 정부의 대북 대화 모색 노력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것이다. 북-미 정상이 만나서 악수를 하는 역사상 최초의 일이 실현됐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냉정하고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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