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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21 16:34 수정 : 2006.03.23 16:07

스크린속나의연인

4월 1일엔 거짓말을 한다. 악의 없는 거짓말에 속은 사람도 껄껄껄 속인 사람도 헤헤 웃으면 그만이다. 분명 우리의 전래 풍습은 아닌데 4월 1일은 만우절이라 불리며 우리에게 잠깐의 활력과 웃음을 주는 그런 날이 돼온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내게 4월 1일은 더 이상 만우절로 기억되지 못하고 활력과 웃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 날은 이제 장궈룽(장국영)을 추모하는 날이 된 것이다. 만우절 장난 같은 소식처럼 장궈룽의 죽음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 일이다. 어제도 보았던 <아비정전>에서 장궈룽은 여전히 런닝, 팬티 바람으로 춤추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가 아닌 원영정을, 아비를, 데이를
난 상상할 수 없다
그는 존재감이 드러나는 최고의 배우였다

내가 장궈룽을 처음 만났을 때(물론 스크린 속에서) 그의 이름은 ‘아걸’(<영웅본색2>, 1987)이었다.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죽어가던 그의 슬픈 눈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신파조의 음악과 그의 슬픈 눈이 만나 이룬 장면은 내겐 ‘최고의 장면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우리 말과 달리 높낮이의 차이가 심한 중국어를 좋아하게 된 것이 그쯤이었다.

그 후 그는 ‘영채신’(<천녀유혼>, 1987)으로 감미롭게 다가왔다가 곧 ‘원영정’(<인지구>, 1987)으로 나를 눈물짓게 하더니 ‘아비’(<아비정전>, 1990)로 나를 사로잡았다. 그의 눈빛, 그의 몸짓, 그의 음성, 그의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런닝 하나만 달랑 걸쳐도 그건 패션이 되었으니까. 깡통을 발로 차며 주리를 틀던 관객들이 급기야 환불 소동을 벌였지만 그건 ‘아비’를 모르는 자들이 벌이는 바보짓이라 코웃음 치며 난 ‘아비’에게 빠져 들었다.

나를 사로잡은 그는 ‘탁일항’<백발마녀전>, 1993), ‘데이’(<패왕별희>, 1993), ‘구양봉’(<동사서독>, 1994)이 되어 나를 흔들어 댔고 급기야 ‘보영’(<해피투게더>, 1997)으로 나타나 나를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허걱. 이런 것이 사랑이로군. 심장이 멎느니, 눈앞이 하얘지느니,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느니 하는 말들이 다 진실이었다. 그건 그에게 빠진 나를 두고 하는 말들이었다. 바보 같지만 뒤늦은 나의 고백이다.

사실 장궈룽은 스크린 속에서 언제나 멋지지만은 않았다. 그의 초기작들에서 그는 별 매력없는 홍콩 배우 이상이 아니었고(그래도 잘생기긴 했었다) <해피투게더> 이후의 작품에서는 빛을 잃어 가며 쇠락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의 눈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깊이도 얕아지고 레이저를 쏘아댈 것 같던 광채도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그런 연유로 그는 자기 자리를 조금씩 내주기 시작했고 그런 그를 보는 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아닌 원영정을, 그가 아닌 아비를, 그가 아닌 데이를, 그가 아닌 보영을 난 상상 할 수 없다. 그는 그저 한 시대를 스치는 연예인이 아니라 존재감이 드러나는 배우였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 불꽃같은 사랑을 하는 상태가 아닌 지금도 난 그가 최고의 배우였다고 생각한다.

김조광수(청년필름 대표)
그의 2주기에 <씨네21> 기자 몇과 함께 그를 만났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걸은 무척 반가웠고 자주 만나는 아비는 언제나처럼 눈부셨다. 그는 더 이상 현존하는 최고의 배우는 아니었지만 우린 행복했다. 그를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그는 여전히 스크린 안에서 빛나고 있었으니까. 그를 꼭 캐스팅하겠다던 꿈을 이룰 수는 없지만 그는 오늘도 내 작은 옥탑방의 텔레비전 속에서 살아 있고 컴퓨터 엠피쓰리 파일 속에서 노래하고 있다. 그걸로 됐다. 그걸로 난 행복하다. 별이 된 그도 행복하길 바란다.


김조광수(청년필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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