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18 17:35
수정 : 2007.04.17 11:49
|
소방차
|
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 (90) 소방차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단절’로 얼룩진 것 같아도 유심히 들여다 보면 ‘연속’ 현상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곤 한다. 그런 걸 발견하는 것도 때로는 쏠쏠한 재미다.
일단 이효리와 더블에스오공일(SS501)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이들 소속사 디에스피엔터테인먼트(옛 대성기획)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에스엠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주류 가요시장을 양분해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시기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이효리가 있었던) 핑클과 젝스키스가 이곳 소속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몇 년을 더 거슬러 올라갈 기억력이 남아 있다면 잼(Zam)과 아이돌(Idol)도 이 계보에 속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국제적인 ‘한류 스타’가 없어서 그렇지 국내시장에서는 이 정도면 괜찮은 비즈니스다.
이제까지 언급한 모든 그룹 혹은 가수를 발굴하고 길러낸 인물은 이호연 현 디에스피엔터테인먼트 대표인데, 이 정도면 ‘연속되는 계보’라고 말하기 충분하다. 게다가 그가 길러낸 스타들의 계보는 1990년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데, 이제 오늘의 주인공 소방차를 언급해야 할 차례다.
소방차가 데뷔한 시점은 1987년이다. ‘1987년’이라면 일년 내내 의미심장했던 사건들이 발생했던 해일 텐데, 소방차는 그 의미심장한 시점에 전혀 의미심장하지 않은 모습으로 어느날 갑자기 텔레비전 스크린에 등장했다. 별로 고민없이 자란 듯한 허여멀건 얼굴의 세 명의 젊은 아해들에 대한 기억은 두 가지가 핵심일 것이다. 하나는 상의는 정장 차림에 하의는 반바지를 입은 특이한 스타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이크를 집어 던져 올렸다가 다시 잡는 특유의 퍼포먼스였다. 여기에 가끔씩 난이도 높은 ‘고공 덤블링’을 시도하는 장면도 추가할 수 있겠다.
음악은? 아이돌 음악이란 게 거기서 거기겠지만, <그녀에게 전해주오>가 김명곤 작곡, <일급비밀>과 <연애편지>가 이호준 작곡, <사랑하고 싶어>가 박청귀 작곡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면 조금 놀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 외에 김기표, 유영선, 송홍섭 등 당시 내로라 하는 작·편곡자(이자 연주인)들이 소방차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사실은 1990년대 이후 확립될 ‘아이돌 시스템’의 예고편을 보는 것만 같다. 최고의 작곡가, 최고의 세션맨, 최고의 프로듀서 등등이 힘을 합쳐 춤 잘추고 얼굴 되는 아이를 스타로 만드는 시스템 말이다. 3집(1989) 발표 이후 인기정상의 상태에서 ‘은퇴’를 했던 것도.
마지막으로 소방차를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이야기 하나는 ‘일본풍’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니스 기획의 작품인 쇼넨타이(소년대)’의 수입대체품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당시에는 쇼넨타이가 누군지, 자니스 기획이 누구인지 잘 몰랐다. 그저 막연히 ‘일본풍’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여기서 ‘일본’이라는 기호는 진짜 일본이라기보다는 앞서 말한 것처럼 ‘별로 고민 없이 자란 새로운 주체성’을 표상했다. 이게 5년도 지나지 않아서 한국사회의 주류적 감성이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당시에는 그리 많지 않았었다. 고뇌를 머금은 음악이 당분간은 더 지속될 것으로 생각했었지…. 신현준/대중음악평론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