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3.25 16:57
수정 : 2007.04.1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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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아이돌 스타’로 1980년대 중반 인기를 모았던 박혜성과 김승진의 2집 커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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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 (91) ‘하이틴 아이돌 가수’ 김승진과 박혜성
영화 <품행제로>을 보면, 여고생들이 ‘롤러장’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른바 ‘스잔파’와 ‘경아파’의 파벌(?) 싸움. 1986년 무렵을 지나온 이들이라면 추억 속의 스냅 사진처럼 남아 있을 장면이다.
이 두 노래 <스잔>과 <경아>를 부른 김승진과 박혜성은 동갑내기로,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누린 ‘10대 아이돌 스타’였다. 당시 팬들 사이에서는 ‘쾌활하고 남성다운 김승진’ 대 ‘상냥하고 부드러운 박혜성’의 라이벌 관계로 대별되기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호리호리하고 곱상한 귀공자 스타일의 ‘꽃미남’형 외모, 감미롭고 부드러운 미성의 소유자로 통했다(특히 박혜성은 광고 모델 출신이었다).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고등학생 신분으로 가수 활동을 했다는 점 때문에 당시에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다. 지금이야 ‘고교생 가수’라는 칭호가 무색할 정도로 어릴 때의 음악 활동이 자연스러운(급기야 당위적인?) 일이 되었지만 그때는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들 때문에 10대 음악 시장이 확장되었다고 말하면 과장이겠지만, 당시 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여학생에게 큰 인기를 끌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이들의 인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소녀 팬과 남자 가수를 둘러싼 고전적인 역할 모형을 거론할 수도 있겠다. 소녀 팬들이 노래 속 여주인공과 자신을 등치시키면서 남자 가수들을 대상화하는 팬덤의 관행이 그대로 드러나므로(이런 진부한 대입에 대한 가치평가는 여기서는 생략한다). 특히 소녀의 이름을 호명한 노래들은 이런 전략을 잘 보여준다. 김승진이 스잔이나 줄리엣이라는 이국적 작명을 택한 반면, 박혜성은 주변에서 흔히 들을 법한 친근한 한국식 이름 (지난 세대의 영희도, 순이도 아닌) 경아를 호명하면서 또래 소녀들의 환상을 자극했다고 농반진반 이야기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남자 가수와 소녀 팬 모두 나이가 들면, 이런 마케팅은 금세 시들해지곤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 두 가수도 반짝 히트를 기록했다. 1987년 발표한 2집에서 이들은 각각 <줄리엣>과 <도시의 삐에로>로 인기 정점에 다다른 후 하강곡선을 그었다. 알고 보면 최근까지 앨범을 발표하며 가수 이력을 이어왔다거나(김승진), 텔레비전, 광고, 영화 음악 등의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암약하고 있다(박혜성)는 기사를 볼 수 있지만….
남고생 가수로 박혜성과 김승진이 있다면 (조금 뒤의 사례지만) 여고생 가수로는 이지연이 있었다. 긴 생머리에 맑은 목소리를 가진 청순한 이미지로 ‘남학생들의 로망’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그녀를 발탁하고 1집에서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난 사랑을 아직 몰라> 등을 작곡한 사람은, 잘 알려져 있듯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의 유현상이었고, 2집에서 <바람아 멈추어 다오> 등을 작곡하며 든든한 후광 역할을 한 사람은 전영록이었다. 이러한 청순형 여가수 계보는 1990년대 초 강수지와 하수빈 등으로 이어지며 재생산된다.
최지선/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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