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가수 유재하의 유일한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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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 (94) 유재하
천재라는 말은 매혹적이다. ‘요절한 천재’라는 단어는 얼마나 낭만적이고 극적인가. 그래서 어떤 이들은 과잉일 정도로 신화화의 대상이 되곤 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런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던가. 대중음악계에 이런 사례를 들라면 유재하를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유재하의 음악 경력은 너무 짧다. 음대 작곡과 재학 시절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을, 졸업 뒤에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아주 잠깐 동안 활동했을 뿐이다. 조용필 7집에 수록된 〈사랑하기 때문에〉, 김현식이 부른 〈가리워진 길〉과 〈그대 내 품에〉, 이문세가 부른 〈그대와 영원히〉 등 다른 가수의 목소리를 탄 곡도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데뷔작이자 유작이 된 1987년 앨범이 고급 발라드의 지평을 확대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사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료, 후배 음악인들의 헌사와 추앙이 계속되는 걸 보면 그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계의 모차르트”, “음반 한 장으로 전설이 되었다”라는 식의 표현이 과장일지언정 1997년 추모 앨범을 통해 많은 음악인들이 그에 대한 무한한 그리움을 표시했고, 유재하가요제라는 경연대회를 통해 후배 뮤지션들이 대중음악계에 등용되어 일군의 계보를 형성하지 않았던가. 베이시스트이자 및 서울음반의 ‘문예부장’이던 조원익이 프로듀싱한 이 앨범에서 유재하는 기타, 피아노 등 여러 악기를 능숙히 연주하며 작사·작곡·편곡·노래까지 겸하는 팔방미인으로서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의 곡은 대개 피아노를 중심으로 관악기나 현악기가 간결하면서도 우아하게 수식하는데, 가령 〈가리워진 길〉은 오보에, 클라리넷, 플루트가 고즈넉하게 협연하고, 〈사랑하기 때문에〉는 실내악 무드의 현악 앙상블을 들려준다. 클래식적 토양(특히 고전주의 스타일)은 〈미뉴엣〉 같은 클래식 소품 연주곡에서도 공공연히 드러나지만, 절제되고 간소한 곡 형식,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는 단아하고 깔끔한 사운드에서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재즈풍의 즉흥적 피아노 솔로(〈우울한 편지〉)나 기타 솔로(〈사랑하기 때문에〉)를 펼치기도 했고, 이문세가 백업보컬로 참여한 〈지난 날〉, 뉴웨이브·신스팝 스타일의 〈텅빈 오늘밤〉처럼 빠른 템포의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클래식 음악에 뿌리를 두고 퓨전 재즈에서 자양분을 흡수해 고품격 발라드의 공식을 확립했다. 그의 가사도 빼놓을 수 없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화두로 ‘사랑하기 때문에’ 울고 웃고 ‘우울한 편지’를 띄우며 그에게 길이 되어 달라고 호소하지만 애상적이면서도 담담한 어조를 잃지 않는다. 그런데 그를 기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1987년의 소용돌이치던 시대적 분위기와는 너무도 다른,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노래한 연가를, 다른 식의 은유로 수렴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 ‘우울한 편지’가 우아하게 라디오 전파를 타던 장면처럼…. 최지선/대중음악 평론‘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의 일련번호가 편집자의 부주의로 중간에 잘못 나갔습니다. 이번 칼럼 번호인 가 맞는 번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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