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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14 17:54 수정 : 2007.06.14 17:54

신승훈을 ‘발라드계의 황제’로 만든 2집 음반(1991년).

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 (102) 신승훈

“제 음악의 정서적 기반은 애이불비(哀而不悲)입니다. 속으로는 슬프지만 겉으로는 울지 않는다는 거죠.” 가수 신승훈이 자신의 음악세계를 설명할 때면 종종 꺼내는 얘기다. 신승훈이 누군가. 1980년대 ‘이문세-이영훈 조’가 어법을 확립한 한국형 팝 발라드의 계보에서 1990년대 오롯이 빛을 발한 발라드의 대명사 아닌가. 앞서 애이불비 정서의 주어를 1인칭이 아니라 ‘한국형 주류 발라드’란 3인칭으로 바꾸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사실 1990년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막 히트했을 때만 해도 신승훈이 훗날 거물이 될 거라 예견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곡, 반주, 가창 모두 당시 유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큰 스타성을 발견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 울리지 마〉 등 후속곡들이 (준)히트하고 데뷔 음반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면서 그의 주가는 급등했다.

신승훈은 이듬해 발표한 2집을 통해 발라드계의 ‘황제주’에 올랐다. 전례 없는 초고속 등극이었다. 애절한 타이틀곡 〈보이지 않는 사랑〉이 그해 가요계를 평정한 일이 결정적 계기였음은 상식일 것이다. 이 곡이 가요 차트에서 10주 이상 정상을 차지했다거나, 베토벤의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를 앞부분에 삽입해 화제가 되었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이후 그가 걸어간 탄탄대로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3집에서 〈널 사랑하니까〉 〈처음 그 느낌처럼〉을 히트시키며 전작의 답습이란 일각의 평가를 무색하게 했으며, 4집은 그 스스로 자부심을 피력하곤 하는 〈그 후로 오랫동안〉과 댄스곡 〈사랑 느낌〉을 통해 ‘발라드 일색’이란 편견을 성공적으로 뒤집었다. 발라드와 댄스가요의 양동작전은 5집에서도 〈나보다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과 〈내 방식대로의 사랑〉으로 훌륭히 재현되었다. 그러는 사이 1집부터 시작된 밀리언셀링 행진은 계속되었고, 5집은 200만장 가까이 팔리면서 정점을 찍었다.

신승훈이 시대를 호령하며 롱런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후 김건모, 노이즈, 박미경 등의 음반을 만든 김창환(라인음향)의 조력 역시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신승훈이 다른 스타들과 달랐던 가장 큰 요인은 음악세계를 스스로 만들고 디자인할 줄 알았다는 점에 있다. 그럴 수 있었던 요인으로, 흔히 간과되곤 하지만, 뛰어난 작곡 능력을 들 수 있다. 데뷔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비롯해 상당수의 히트곡들이 자작곡인데, 이들 곡만으로 노래방에서 1시간 이상 부르고도 남을 만한 정도다.

스튜디오 작업만큼(또는 그 이상으로) 라이브를 중시한 점 역시 롱런의 열쇠 중 하나였다. 조용필, 이승환, 이승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상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팬들과 끈끈한 관계를 지속해온 데에는 라이브에 공들인 덕이 크다. 듣는 이를 흡인하는 신승훈의 마력적인 가창력은 너무나 당연해서 빼놓을 뻔했다. 청아하면서도 애달픈 그의 노래는 풍부하고 진한 표현력에 있어서 동시대 가히 독보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성적으로 지나치게 밀착하도록 하는 가창이어서 싫어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종합하여 셈해 보면 이는 그만의 강점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가 정상을 지킨 것을 보면 말이다.

이용우/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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