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6.28 17:50
수정 : 2007.06.2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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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진실의 목소리 안치환의 1집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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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팝의 사건·사고 (104) 노찾사, 그리고 김광석·안치환
누가 뭐래도 ‘민중가요 대중화’의 주역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수면으로 급부상하며 제도권에 진입(하는 전략을 시도)한 뒤, 1984년 김민기가 제작한 1집이 뒤늦게 공식 소개되고, 1989년에는 놀랍게도 2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사건’도 일으켰다. 정치적으로 유화된 1990년대에는 ‘투쟁과 결의’ 대신 ‘일상과 위로’의 모드를 채택했고 얼마 뒤 잠정적으로 활동이 끝났다. 지금은? 그들의 노래는 댄스나 힙합 버전으로 리메이크되어 인기를 모으기도 했고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이들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며 격세지감을 느끼는 이들, 활동을 재개한 노찾사를 보며 ‘7080 콘서트’처럼 추억과 향수를 판매하는 세태와 비교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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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찾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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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찾사 출신의 스타(?) 가수들도 있다. 안치환, 김광석, 권진원 등이다. 이들이 ‘노찾사’ 태생임은 암암리에 곳곳에서 드러난다. 공연 중심의 활동 방식,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고단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안의 메시지, 어쿠스틱 기타 중심의 사운드에 실은 포크 지향적 태도…. 특히 비슷한 시점에 김광석과 안치환은 록과 조우하는데 이는 조동익 밴드의 세련된 편곡과 연주에 힘입은 것이다.
‘어떤’ 세대의 영원한 우상으로 남은 김광석은 노찾사 계열과도, 아마추어적인 분위기의 동물원과도 다소 다른 길을 선택했다. 어쿠스틱 기타와 하모니카를 들고 1천여회가 넘는 소극장 라이브 공연으로 그만의 세계를 찾아나선 것이다. 특히 3집(1993), 4집(1994)에 이르면 포크·포크록 사운드를 강화하며 낭만과 사색이 깃든 음유시인의 이미지를 완성했다. 소박하고 건강한 결의의 송가 <나의 노래> <일어나>, 섬세한 서정으로 삶을 성찰한 <회귀>, 30대의 초상화 <서른 즈음에> 등. 더불어 한대수, 양병집, 이정선 등의 포크 기수들을 ‘다시 부르기 프로젝트’에 등재시키며 자신의 뿌리와 지향으로 은밀히 공명시켰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등 한때 노찾사의 ‘목소리’였던 안치환은 지금도 왕성히 활동 중이다. 안치환은 현실비판적인 민중가수만도, 사랑노래를 부르는 대중가수도 아닌(아니면 둘 다의) 길을 걸어왔다. 투박하고 거친 목소리에 실린 그의 음악언어는 무엇보다 시를 통해 빛을 발했다. 안치환이 가장 아끼던 김남주(<저 창살의 햇살이> <자유> 등)를 비롯해 김지하(<타는 목마름으로>), 나희덕(<귀뚜라미>), 류시화(<소금인형>), 정호승(<우리가 어느 별에서>) 등의 시를 호명했다. 그도 포크를 본거지로 삼았으나 김광석처럼 록을 수용해 3집(1993), 4집(1995) 등을 발표했다(이후 밴드 ‘안치환과 자유’를 거느리게 된다).
이제 ‘삶의 노래, 진실의 노래’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노찾사의 ‘히트곡’들은 ‘애창가요’ 또는 ‘건전가요’가 되었다. 김광석은 잃어버린 꿈의 메타포, 또는 신화가 되었다. ‘저 들에 불을 놓아’ 고집스럽게 외길을 걸어온 정태춘 같은 이들도 있다. 이 모두가, 노래를 통해 무언가를 꿈꾸고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이들이 남긴 후일담이 아닐까.
최지선/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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