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8.10 02:35
수정 : 2007.08.10 02:35
[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 (108) 멍키헤드, 크래쉬, 넥스트
1990년대 초, 한국 메탈 진영에서는 메탈리카, 메가데스, 세풀투라 등에 영향 받은 스래시 메탈이 득세했다. 그 와중인 1994년, 터보의 <팔도유람>, 멍키헤드의 <부채도사와 목포의 눈물> <남행열차> 등 스래시 메탈 밴드들이 리메이크한 곡들이 뜻밖의 히트를 기록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른바 ‘만요’(익살스런 노래), 트로트, 만화영화 주제가 등과 강력한 스래시 메탈 사운드, 그리고 익살스런 설정 같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들의 결합은 참신하다는 반응을 낳으며 화제와 인기를 모았다. 이는 한편으로 한국 록의 오랜 엄숙주의와 경직성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징후였으나, 다른 한편으로 별미가 아닌 메인 메뉴로는 여전히 대중과의 합일이 힘겹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런데 1994년이라면 서태지와 아이들이 절정의 인기를 구가한 해이다. 이들은 3집에서 음악적으로 얼터너티브 록을 표방하는 한편 통일을 테마로 한 <발해를 꿈꾸며>와 교육문제를 고발한 <교실이데아>를 앞세워 메시지를 강조했다. 이를 통해 기존 팬층을 더 공고히 하는 동시에 ‘진지한’ 청자들도 새로운 팬으로 끌어들였다. 다들 아는 얘기를 새삼 꺼낸 건 바로 <교실이데아>의 또 다른 주인공, 즉 ‘속 시원한’ 거친 코러스를 선사한 이를 상기하기 위해서다. 크래쉬의 안흥찬(보컬, 베이스) 말이다.
대중적으로는 <교실이데아>와 환경콘서트 ‘내일은 늦으리’를 통해 유명해졌지만, 크래쉬는 이미 메탈 마니아들 사이에서 스타였다. 그해 1월 발표한 데뷔작
은 거침없는 강력한 사운드와 탄탄한 짜임새로 극찬을 받은 바 있다. 거의 대부분 영어 가사에, 서정적 선율이라곤 귀를 씻고 찾아도 희박했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안흥찬의 반항적이고 냉소적인 보컬과 강력한 카리스마, 그리고 흠잡기 어려운 레코딩 사운드는 메탈 팬들의 오랜 불만과 숙원을 단숨에 해결해주었기 때문이다.
1994년은 넥스트가 2집 을 발매한 해이기도 하다. 신해철은 ‘작정하고’ 스래시 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메탈을 버무린 음악을 선보였다. 상업적 안전판인 발라드 <날아라 병아리>를 제외하면, <이중인격자> 등 강력한 출력을 자랑하는 곡들이었다. 크래쉬가 직설적인 ‘거두절미의 미학’을 추구한 반면, 넥스트의 음악은 흔히 ‘철학적 가사와 실험적 사운드’로 지칭되곤 하는 사변적이고 서사적인 경향을 띠었다.
돌이켜 보면 1994년은 한국 메탈이 몰락하기 직전 마지막 불꽃을 피웠던 해였다. 앞서 보듯, 스래시 메탈 풍 코믹 리메이크가 인기를 끌었지만 반짝 해프닝에 그쳤다(메탈의 희화화로 작용한 측면도 있었다). 또 크래쉬가 혜성처럼 나타나 영미권에 대한 콤플렉스를 비로소 해소시키며 절대적 지지를 이어갔지만 이후 척박한 환경에서 분투하는 운명을 피할 순 없었다. 넥스트는 메탈의 색깔을 분명히 함으로써 1990년대 가장 큰 팬덤을 거느린 록 밴드의 지위에 올라섰지만,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그러는 사이 메탈 공동체는 급속히 와해되어갔고, 메탈은 점차 컬트가 되어갔다.
이용우/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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