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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30 20:49 수정 : 2007.08.30 20:49

삐삐프로젝트의 ‘방송사고’

‘벌써 10년’ 전인 1997년 2월15일, 한국 대중음악 사상 유례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록 밴드 삐삐롱스타킹이 〈생방송 인기가요 베스트 50〉에 출연해 연주하는 도중,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드는 서구식 욕설을 하고 카메라에 침을 뱉는 방송사고를 낸 것이다. 이 사건은 8년 뒤 후속 프로그램인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어느 인디밴드가 전라의 퍼포먼스를 벌인 전무후무한 방송사고로 되살아난 바 있다. 사건의 강도와 사회적 파장이야 단연 후자가 강했지만, 삐삐롱스타킹의 해프닝은 상상조차 못한 사상 초유의 사고였다는 점에서 무엇과도 비견하기 어려운 사고였다.

삐삐롱스타킹, 그리고 이들의 전신인 삐삐밴드(통칭 삐삐프로젝트)는 1990년대 가요계의 돈키호테였다. 95년 데뷔 당시, 이들은 펑크음악을 표방했다. 그런데 인사말을 두서없이 엮은 듯한 〈안녕하세요〉와 “딸기가 좋다”는 막무가내식 악쓰기로 일관한 〈딸기〉처럼, 이들이 내놓은 음악은 펑크에 대한 통념과는 거리가 있었다. 또 ‘문화혁명’이란 거창한 음반 타이틀과 대조적으로, 철없는 스무살 여자애는 ‘어이없이 노래’하고 30대 아저씨 둘은 ‘건성건성 반주’하는 모습이었다.

삐삐프로젝트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장난하냐’며 미간을 찌푸리거나 ‘참신하고 재밌다’며 눈을 반짝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찬반양론은 극적인 방송사고에 이어 해체 수순을 밟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런데 불편한 심기를 보인 이들 중에는 록 커뮤니티 성원들도 있었다. ‘아저씨 둘’이 메탈 1세대인 강기영과 박현준임을 알아본 ‘전통의’ 메탈 팬들은 단순 헐렁한 음악 스타일로의 변신에 냉소를 감추지 못했으며(변절자?), 이들과 취향의 라이벌을 형성하던 ‘신흥’ 펑크 마니아들도 삐삐프로젝트가 펑크를 표방한 데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사이비?). ‘진정한’ 록과 ‘진짜’ 펑크를 자임하는 집단들로부터 모두 배척받은 셈이다.

하지만 그런 반감과 논란이야말로 삐삐프로젝트가 노렸던 것이다.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신화이자 예술이 되어버린 록을 패러디하고 희화화함으로써 혼란을 야기하는 것 말이다. 이들의 전략은 아예 록을 부정한 2집 〈불가능한 작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들은 저급한 음악으로 무시되던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으로 완전 변신했고 방송에 나와 ‘대놓고’ 립싱크 하고 연주하는 척했다. 그럼으로써 댄스음악에 대한 편견과 주류 댄스가요의 획일성에 도전했다.

삐삐프로젝트는 시종 가볍고 유치하며 키치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면서 겉으로 말랑말랑 쉬워 보이지만 바탕이 탄탄한 음악을 들려줬다. 이를 통해 고급음악과 저급음악, 진정한 음악과 상업적 팔아먹기의 이분법에 커다란 의문부호를 남겼으며, 오랫동안 진지함과 권위에 억눌려 있던 록에 가벼운 재미를 돌려주었다. 이들 이후 좀더 자유롭고 다양한 음악 및 활동방식이 뒤따랐음은 우연이 아니다. 요컨대 삐삐프로젝트는 새로운 한국 팝의 한 축을 연 도화선이 되었다.

이용우/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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