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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06 21:44 수정 : 2007.09.06 21:44

연재를 마치며

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은 2005년 8월15일 해방 60년을 기념하여 시작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60살’을 맞이하였고, 그렇다면 해방 이후 대중음악도 60년의 세월을 겪었으니 그사이 대중음악계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훑어보자는 것이 이 기획의 취지였습니다.

그렇지만 대략 1990년대 중반까지 훑어보는 것으로 이 연재를 중단할까 합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텐데, 무엇보다도 90년대 중반 이후 현재에 이르는 시기의 대중음악은 아직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종합적 평가를 내리기가 영 곤란합니다. 90년대 초의 음악과 음악인을 다루면서 이런 문제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러니 최근의 음악들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보다는 ‘당대의 평론’의 형식을 취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음악인들도 자신이 ‘역사’의 일부가 되는 것보다는 ‘현재’에 머무르고 싶어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해방 후 60년, 식민지 시대를 포함한다면 최소한 80년에 이르는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대한 전반적 평가를 내려 보면서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첫째 확인되는 사실은 대중음악이 확고하게 산업화되었다는 점입니다. 한 예로 과거에 대중음악계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어쩌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지만, 요즘은 철저한 기획과 계산에 의해 대중음악이 생산되고 유통되고 있습니다. 그게 언제 형성되었는가를 두고서는 논란이 있지만, 대체로 90년대를 거치면서 이런 시스템이 ‘확립’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건 토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둘째는 90년대 말 이후 ‘제2차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흔히들 ‘정보화’나 ‘디지털화’라고 말하는 변화입니다. 이제는 음반(시디 등)이라는 유형물이 없는 음원이 유통·소비되고 있고, 몇몇 ‘디지털 싱글’이 발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음악의 생산마저도 유형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음반이 판매되지 않는다’는 불평을 넘어 ‘음악의 질(퀄리티)이 떨어진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실인지는 토론이 필요합니다.

셋째 한국 대중음악은 이른바 한류 현상 이후 국경을 넘어 전파되고 있고, 아시아권에서 이런 현상은 쉽게 관찰됩니다. 마찬가지로 일본 대중음악은 한국 젊은이들의 일상생활의 수단이 되었고, 빈번한 교류로 인해 중화권 대중음악을 고정적으로 즐겨 듣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영미 팝의 헤게모니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변화의 조짐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대중음악은 ‘아시아화’(Asianization)의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이런 산업적·기술적·지리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정감적 소통의 수단으로 삼는 실천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고,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음악 페스티벌’이 여름마다 열리는가 하면, 몇몇 ‘뮤지컬’은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있고, 아이돌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팬 클럽은 여전히 북새통입니다. 홍대앞의 라이브 클럽들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았고, 80년대 이전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중장년층도 인터넷 사이트와 케이블 텔레비전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든,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는 꽉 짜여 관리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에게 음악이 갖는 의미는 아직도 사활적입니다.

어떤 저명한 음악 평론가가 말했듯 ‘재미를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 투쟁이 계속되는 한 음악에 대한 이야기, 이른바 ‘담론’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런 신문 지면만이 아니라 여러 공적 공간에서도…. 대중음악은 공공의 지식이 되었고, 이런 지식들은 한 사회의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아디오스!

<끝>


신현준/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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