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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16 18:43 수정 : 2010.06.16 21:36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사람의 진면목은 ‘잘나갈 때’가 아니라 ‘궁지’에서 나오는 법이다. 세 가지 사례.

첫째, <뉴욕 타임스> 2008년 5월 한 기사를 보자. 미국 일리노이대학병원 종양외과장인 다스 굽타 박사는 환자의 아홉번째 갈비뼈에 있는 조직을 떼어내야 하는 것을 여덟번째 갈비뼈에서 떼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 환자가 알게 되면 난리가 날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환자에게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했다. 환자는 의사를 고소하지 않았고, 병원과 협의를 통해 8000여만원에 이르는 배상금을 받았다. 피해 여성 환자와 남편은 담당 의사가 너무 솔직해서 분노가 그만 사라졌다고 이야기했다.

일리노이대학병원뿐 아니라 하버드, 스탠퍼드, 미시간, 버지니아대학 등 미국의 주요 병원에서는 의료사고 발생 때 자신들의 실수나 잘못을 즉각 공개하고 환자에게 사과하며, 병원 쪽에서 보상금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진실 말하기’(disclosure)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결과? 미시간대학병원에서 이 제도 실시 전인 2001년과 이후인 2005년을 비교한 결과, 연간 의료소송 건수가 262건에서 114건(2007년에는 83건!)으로, 연간 소송비용은 300만달러에서 100만달러로 줄어들었다. 일리노이대학병원에서는 의사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한 37건을 분석한 결과 단 한 건만 환자가 의사를 고소했다. 사과는 실질적으로 소송을 줄이고 있다.

둘째, 2002년 3월3일 당시 김근태 민주당 고문은 2000년 당 최고위원 경선 때 2억원이 넘는 불법정치자금을 사용했다고 고백했다. 현역 주요 정치인으로서는 최초의 양심선언으로 기록될 이 고백으로 인해 일부 동료 의원들로부터 “혼자 깨끗한 척한다”, “바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고, 검찰로부터 기소를 당하기까지 했다. 그는 또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근무하던 2005년 설에는 20년 전 자신을 고문했던 이근안 전 경감을 여주교도소로 찾아가 면담하고 용서하기도 했다.

셋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실수들. 대통령 후보자 시절 여기자에게 애인에게나 쓸 법한 ‘스위티’란 표현으로 말실수를, 취임 뒤 기자회견에서 이전 퍼스트레이디였던 낸시 레이건에 대해서도 말실수를 했다. 자신의 정치적 대부이자 대선 일등공신인 톰 대슐이 탈세문제로 보건장관 지명자에서 퇴진해야 했고, 하버드 법대 흑인교수가 자신의 집에서 경찰에게 도둑으로 오인받은 사건을 두고 경찰에게 ‘멍청한 짓’을 했다고 공격하는 실수를 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는 자신의 실수가 확인되면 어김없이 일관된 행동을 취했다는 점이다. 즉, 누구보다 빨리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필자는 지난 10년 넘게 리콜 등으로 ‘궁지’에 몰린 기업들이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에 대해 컨설팅을 해왔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궁지에 몰릴 경우 탈출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은 바로 제대로 된 사과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발견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과하길 거부하거나 질질 끌다가 마지못해 사과한다. 제대로 된 사과는 과연 무엇일까? 세 가지가 중요하다. 실수나 잘못의 투명한 공개, 책임의 인정을 동반한 진심 어린 사과, 그리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극복책 제시이다.

다스 굽타, 김근태, 오바마는 모두 사과의 파워를 실천한 리더들이다. 사과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아론 라자르는 한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사과를 나약함의 상징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과의 행위는 위대한 힘을 필요로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위대한 힘’을 펼치는 리더를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사과는 ‘루저’(loser)의 언어가 아니라 ‘리더’(leader)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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