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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2.08 18:34 수정 : 2010.12.09 08:23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의료 기술이 세계 최고라는 미국에서 해마다 의료사고로 숨지는 환자는 얼마나 될까?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는 상원의원 시절이던 2006년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에 함께 글을 실으면서, 미국 의학원의 1999년 보고서를 인용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 수는 최대 9만8000명이라고 되어 있다. 역사상 최악의 테러인 9·11 사태로 숨진 사람이 3000명인데, 그 수의 30배에 해당하는 사람이 해마다 의료사고로 숨진다는 말이다. 미국 의학원은 의료사고 사망 원인의 90%는 법률을 포함한 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결론 내렸다.

우리는 어떨까? 아직 이런 통계는 없다. 다만 미국과 인구 대비로 단순하게 비교한 뒤, 미국에 비해 의료사고로 인한 환자 사망 수치가 절반이라고 가정해도 매년 7000여명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보다 많다.

2007년 10월. 나는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소리워크스(SorryWorks!)라는 비정부기구(NGO)의 창립자 더그 워체식을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1998년 5월 친형을 의료진의 명백한 실수로 잃은 아픔을 갖고 있다. 잘못된 진단 및 처치, 심지어 환자 차트가 바뀌는 실수까지 한 것이다. 형이 사망하자, 병원 쪽은 태도를 바꾸었다. ‘전통적인’ 의료사고 대처 방법인 “부인과 방어”의 원칙에 따라 담당 의사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모든 이야기는 변호사와 하게 되었다. 사망 원인에 대한 설명조차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워체식의 가족은 결국 병원을 상대로 힘겨운 소송에 들어갔고, 적지 않은 합의금을 받았다.

워체식은 엄청난 합의금을 받은 뒤에도 뭔가 풀리지 않은 것이 있었다. 사고 당시 병원 쪽이 제대로 사인을 설명하고, 실수에 대해 사과하고, 적절한 보상책을 제시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서로 고통스러운 소송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의료사고 때 투명한 잘못의 공개와 사과, 적절한 배상책 제시가 소송을 줄일 수 있다는 논문을 접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된 그는 소리워크스라는 단체를 세워 ‘진실 말하기(disclosure) 프로그램’을 미국 병원 내에 확산해오고 있다.

진실 말하기 프로그램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담당 의사가 환자 가족에게 다가가 유감을 표시하고 신속하고 투명한 조사를 약속한다. 조사에는 환자 쪽의 변호사나 의사가 참여하도록 하여 공정성을 확보한다. 조사 결과 병원 쪽의 잘못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면, 유감의 표시를 넘어 책임을 인정하고 적절한 보상책을 제시한다. 물론 조사에서 의료진의 잘못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을 때는 그 이상의 책임 인정을 하지 않는다.

미국 최고의 병원이라는 존스홉킨스를 비롯해 하버드, 스탠퍼드, 미시간, 버지니아 대학병원 등은 이제 부인과 방어의 패러다임이 아닌 투명한 진실 공개 방식을 택하고 있다. 미시간 대학병원의 경우를 보자. 진실 말하기 프로그램 도입 전인 2001년 8월에는 연간 262건의 소송이 발생했으나 2007년에는 83건으로 3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다. 소송을 하더라도 한 건당 해결까지 걸리는 시간은 20.3개월에서 8개월로, 소송으로 쓰는 평균 비용은 절반 이상인 61%가 줄어들었다.

워체식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미시간 대학병원에 한 가지 변화가 생겼어요. 그들이 의료사고에 대한 발표를 하면 사람들이 믿게 된 것이지요. 이제 미시간 대학병원이 의료사고 후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발표하는 사안에 대해서 변호사들은 소송을 꺼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신뢰란,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뢰 있는 행동이 쌓여서 나온다. 공정사회를 ‘말’로 약속했지만, 아직 ‘행동’으로 증명한 것은 없는 것 같아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포폰 이슈를 얼마나 공정하게 처리할지 관심 갖고 지켜보는 요즈음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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