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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21 19:10 수정 : 2011.11.21 22:07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코미디란 진실을 드러내는 수단입니다. 코미디를 보고 관객이 웃음을 터뜨리는 것은 그 안에 진실이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해 50년 넘게 코미디 즉흥연기의 최고로 알려진 세컨드시티 극단에서 트레이닝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톰 요턴 대표가 내게 해준 말이다.

작년 여름 나는 2주간 시카고 세컨드시티 극장에서 코미디언들로부터 즉흥연기 트레이닝을 받고, 요턴 대표를 인터뷰한 일이 있다. 시카고대학 졸업생 및 중퇴자들이 주축이 된 ‘컴퍼스 플레이어스’라는 극단 모임에서 출발한 세컨드시티는 1959년 설립되어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 나온 빌 머리를 비롯해 존 벨루시,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등 수많은 코미디언과 영화배우를 배출한 미국의 명문 코미디 극단이다. 뛰어난 영화배우가 되기 위해 코미디 무대 경험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에서 코미디는 시민은 물론 프로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예술이다.

코미디와는 거리가 먼 내가 이곳에 간 이유가 있다. 세컨드시티에서는 코미디를 무대에 올리는 것 외에, 코미디언들의 즉흥연기 방법론을 활용해 매년 미국 내 수백개 기업에 창의력 및 소통에 대한 트레이닝을 실시하고 있다. 기업의 임직원들이 코미디언들로부터 배우고 있다. 이들은 정치 및 기업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갈등상황, 윤리적 딜레마와 같은 ‘불편한 진실’을 소재로 삼아 코미디를 만든다. 코미디의 풍자기법을 통해 ‘불편한 진실’에 대해 사람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이끌어낸다.

세컨드시티에서 얻은 중요한 교훈이 있다면 바로 ‘예스, 앤드’ 정신이다. 예를 들어보자. 두 사람이 무대에 선다. 물론 미리 짜인 대본도 없다. 한 사람이 갑자기 “이보게 웨이터, 음식 시킨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안 나오나?”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그 상황을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이고(‘예스’ 하고), 상대방의 연기에 무언가를 더하여(‘앤드’ 하여) 맞장구를 친다. 이러한 ‘예스, 앤드’의 정신은 창의성을 위해 특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 상대방의 아이디어를 부정하거나 폄하하게 되면 창의성은 위축된다. 그보다는 상대방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긍정하고 자신의 또다른 아이디어를 연결해가는 가운데 창의성은 나오기 마련이다.

세컨드시티는 즉흥연기를 활성화시킨 최초의 극단으로 ‘즉흥연기의 하버드’라고 불린다. ‘진짜 하버드’를 졸업한 국회의원 강용석이 최근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국회의원을 풍자한 것을 두고 개그맨을 집단모욕죄로 고소했다. 풍자개그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예스, 앤드’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코미디 풍자에 담긴 진실을 발견하고, 정치인으로서 개선 노력을 하길 바랐다면 너무 ‘오버’한 것일까? <에스비에스>(SBS) 정성근 앵커는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입니다. 개그를 다큐로 받은 겁니다”라고 멘트를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컨드시티 수업에서 나를 지도했던 코미디언 맷 호브디는 즉흥연기에서 상황은 즉흥적으로 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배우는 일관된 캐릭터를 가져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일로 강용석 의원이 캐릭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굳히는 것을 보니 그에게도 코미디언의 자질은 충분하다. 반면, 개그맨 최효종은 풍자의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진실이 담긴 발언을 했으니 그에게도 정치인의 자질은 충분하다. 찰리 채플린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코미디’라고 했다. 우리 정치는 코미디요, 시민의 삶은 비극이다.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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