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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14 19:11 수정 : 2012.05.14 19:11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친구들에게 진용이는
부모님과 화해하라고 했다
그 말에 모두 공감했다

자식은 부모에게 일종의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 위대한 학자인 마셜 매클루언은 기저귀를 뜻하는 영어단어(diaper)를 뒤에서부터 읽으면 보답하다(repaid)라는 단어가 된다고 재치있게 말했다. 나이를 먹으며 부모를 떠나보내는 친구가 늘어간다. 부모와 자식 간에 왜 서로 섭섭한 일이 없겠으며, 미안한 일이 없겠는가? 하지만 많은 부모 자식들이 화해하지도 털어내지도 못하고 헤어진다.

“우리 나이면 이제 부모와 화해할 때가 되었다….” 30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 진용이는 저녁 식사 중 난데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몇년 전 일요일, 갑자기 아버지께서 목욕이나 함께 가자고 하시는 거야. 솔직히 귀찮아서 못하겠다고 했지.” 진용이가 목이 메는 말을 하려는지 침을 삼켰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버지랑 목욕탕에 백번은 갈 수 있을까 싶더라구….” 진용이는 아버지와 목욕탕 동행을 그렇게 시작했다. 열댓번쯤 목욕을 했을 때, 진용이는 믿지 못할 전화를 받았다. 전남에서 열린 회사 모임에서 아버지가 실족해 머리를 크게 다치셨다는 것이었다.

달려간 가족들은 어이가 없었다. 진용이와 동생, 매형 모두 ‘알아주는’ 종합병원의 의사였지만 손을 쓸 수 없는 뇌사상태였다. 게다가 십년 전 시신 기증을 서약하는 어머니를 나무라시던 아버지께서 가족들 몰래 장기 기증 서약을 했음도 알게 되었다. 며칠 후 진용이는 수술실에서 아버지의 장기가 기증되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또한 장례식장에 찾아온 손님들로부터 아버지가 박사 7명을 비롯해 여러 장학생을 뒷바라지해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진용이는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했다. 아버지와 목욕탕에서 짧게나마 삶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에. 부침이 심했던 아버지의 사업으로 말 못할 고생을 했던 진용이는 어려운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진용이는 부모님과 화해하라고 했다. 웬일인지 부모님과 원수진 것도 아니지만 그 말에 모두 공감했다. 이를테면 가끔 찾아뵙는 부모님과 나 사이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다. 아버지와는 말없이 텔레비전을 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눌 뿐이며, 어머니는 부엌에서 음식 하나라도 더 만들어 주시려고 이야기할 기회가 없다. 반성해 보건대, 직장에서는 고객에게 친절하지만 부모에게는 무뚝뚝한 것이 나의 모습이다.

또 한 가지 느꼈다. 진용이는 아버지를 따라 장기 기증을 약속했고, 노숙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의료 봉사를 하고,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남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소통을 연구하는 나로서는 진정한 소통의 영향력은 말이 아닌 몸, 지식이 아닌 태도에서 나오는 것임을 다시 깨닫는다.

나의 아버지는 매주 등산을 함께 하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뜬 뒤로 무척 힘이 빠졌다. ‘한 성질’ 하시던 어머니는 바쁘게 사는 형과 나를 볼 때 가슴이 미어지는 표정이다. 부모님이 한없이 미웠던 때가 있었다. 어린 시절 연애에 대해, 내 삶에 대해 이리저리 간섭하는 부모가 싫었고, 섭섭했다. 그 앙금은 사실 마음속 어디엔가 남아 있다. 나를 무척이나 귀여워하셨던 외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말 없는 외할머니를 껴안고 울며 ‘엄마 미안해’를 외치던 어머니를 나는 기억한다. 어머니도 외할머니와 털어내지 못한 앙금이 있었으리라.

미국 출장길의 비행기에서 이 칼럼을 쓰고 있다. 도착하면 엽서라도 하나 부모님께 띄울까 보다. 워낙 보수적이라 <한겨레>는 구독하지 않지만, 매주 내 칼럼은 인터넷에서 읽어보시는 부모님께서 이 글을 보시면 뭐라 하실지 기대와 걱정이 딱 절반씩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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