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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17 19:20 수정 : 2012.09.17 20:53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만약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입장을 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박 후보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할까? ‘아버지 보호’와 ‘아버지 잘못의 시인’ 사이에 놓인 박 후보의 처지가 쉽지 않은 상황임은 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이를 ‘충직 딜레마’라 부르고, 따로 강의를 할 정도였다.

리더의 사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번 박 후보 사례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학문적으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정치 분야의 사과에서 과거사, 즉 조상의 잘못과 관련된 문제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독일과 일본의 전범 문제, 중세시대 가톨릭교회의 잘못, 미국의 노예제 등 많은 사례가 있다.

‘원칙주의자’라는 박근혜 후보가 안타깝게도 과거사 사과의 원칙을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와 관련한 중요한 질문을 정리해본다.

1. 조상의 잘못에 대해 직접적 잘못이 없는 후손이 과연 사과를 해야 하는가? 이 부분에 대한 답은 마이클 샌델의 의견을 빌려보자.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훌륭한 업적이나 축구대표팀의 선전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하고, 반면 2007년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한국인이 총기를 난사해 32명을 죽였을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샌델은 철학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를 인용하여 인간은 독립된 존재라기보다 조상이나 민족, 국가라는 ‘이야기 속에 자리한 존재’라고 말한다. 박정희라는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박 후보는 어렵겠지만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사과할 책임이 분명히 있다.

2. 과거사에 대해 어떻게 사과해야 할 것인가?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다양한 사과’를 해왔다. 그러나 당시 피해자와 후손인 우리는 이런 사과를 진정한 사과로 인정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사과에 대한 연구를 하는 변호사 출신 철학교수 닉 스미스는 사과란 피해자와 사과를 하는 사람이 과거 사건에 대해 동의할 때에 가능하다고 본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과’ 표현을 아무리 바꿔봐야 진정한 사과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박 후보가 인혁당 사건의 사실에 대한 피해자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고,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사과란 ‘원칙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3. 무엇이 진정한 사과인지 누가 규정하는가? 박 후보는 “수차례 위로의 말씀도 드렸고… 그걸 사과가 아니라고 한다면…”이라고 말했다. 오해한 쪽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박 후보 자신이다. 사과는 피해자 쪽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사과’로 인정된다. 사과하는 쪽이 아닌 피해자가 무엇이 ‘진정한 사과’인지를 규정하는 것이다.

만약 박 후보가 인혁당 사건에 대해 어떤 이유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경우엔 ‘난 사과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위로는 할 수 있지만, 사과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차라리 맞다. 마이클 샌델은 이렇게 말한다. “사죄에서 중요한 부분은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사고방식에서 중요한 점은 책임의식이다.”

박근혜 후보는 과거의 잘못과 화해하고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넬슨 만델라는 “진정한 화해란 단순히 과거를 잊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화해는 잘못에 대한 명확한 인정이 먼저이고, 피해자 위로는 그다음이다.

정치 행로에서 ‘원칙’을 내세워온 박 후보가 인혁당 사건을 비롯한 과거사에 대해 ‘사과의 원칙’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박 전 대통령도 대선에 나서는 딸에게 지금쯤 이를 원하지 않을까?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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