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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04 19:18 수정 : 2013.03.04 19:18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장면 1. 독거노인 주거환경 개선 및 급식 지원, 장애우 사회활동 지원, 불우아동 학용품 및 생필품 지원… 국내 한 기업이 어려운 곳을 위해 기부와 지원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이 기업은 ‘함께 사는 따뜻한 사회를 실현하고자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추진한다’고 누리집에 적고 있다. 칭찬해야 할 모습이다.

장면 2. 다시 이 기업의 누리집에 나와 있는 ‘윤리경영 가치 체계’를 보자. 이들은 경제적·박애적·법적·윤리적 등 4대 책임을 두고, 특히 법적 책임과 관련해 “예외 없는 100% 준법 실천”을 강조한다. 게다가 핫라인까지 두어 ‘잘못된 관행이나 부정부패 등… 임직원의 비윤리적 행위를 신고하는 제도’까지 두고 있다. 흠잡을 데 없는 시스템이다.

장면 3. 안타깝게도 이 기업이 최근 궁지에 몰려 있다. 계열사 부당 특혜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직원 불법사찰 의혹으로 압수수색을 당했으며, 판매직원 1900여명을 불법파견받은 사실을 적발당했다가 하도급 직원 1만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기업들이 ‘좋은 일’에 갈수록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생산성본부가 2012년 국내 대기업·공공기관·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67%는 사회공헌 정책을 갖고 있으며, 전담부서나 전담자가 있는 곳도 85%에 이른다.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대기업이 많은 돈을 기부하는 소식도 흔히 접하게 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오해’도 심화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새로운 국제기준인 아이에스오(ISO) 26000 워크숍에 참석한 적이 있다. 국제기준이 말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관한 가장 큰 오해는 ‘자선’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아이에스오 26000 문헌에 자선이란 단어는 딱 한번 등장할 뿐이다. 자선이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가지고 하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자선이나 기부가 아닌 ‘이익을 벌어들이는 방식’에 대한 것이다.

한국생산성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71%가 최고경영자의 사회공헌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답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어떤 곳에 얼마나 기부하는가가 사회적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이에스오 26000이 세부 항목에서 명시하고 있듯,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이익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권, 노동 관행, 환경, 공정운영 관행, 소비자 이슈, 지역사회 기여 등을 어떻게 경영활동에 반영했는가와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기업의 경영 과정을 볼 수 없었고 그 결과만 알 수 있었다. 기업의 기부나 후원은 착하고 책임 있는 활동으로 인식되곤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과정이 정당하고 투명하지 않으면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보지 않는다.

사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법’보다는 ‘기대’와 관련되어 있다. 동반성장, 경제민주화 등은 법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기대의 영역이다.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있지만, 그동안 대기업들은 나름의 선한 의도로 자선과 기부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이제 기업들은 남을 돕는 것 이전에 기업 자신이 이익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돌아보아야 한다. 기부와 후원으로 대표되는 기업의 선의가 빛을 발하려면 합당한 과정을 통해 이익을 만든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회적 책임의 시작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좋은 일’을 하는 것 이전에 ‘좋은 이익’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기부’보다는 ‘기본’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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