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큼 열정적이었다. 입헌군주제로 통일된 조국 이탈리아를 보기 위해, 여성과 소외계층의 교육과 언론의 자유를 실현시키기 위해 열정적이었다. 자신과 같은 망명객들을 돕는 일에도 열정적이었다. 열정적인 만큼 지적이었다. 이탈리아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의 <새로운 학문>을 프랑스어로 번역했고, 가톨릭 교리에 대한 4권짜리 책도 썼다. 신문도 펴냈다. 미국의 저명한 일간지에 그가 쓴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만년에는 나폴리, 로마에서 밀라노까지 자원봉사자들을 이끌고 전장에서 간호에 나섰다. 터키 자객의 칼에 찔릴 위기도 겪었다. 1871년 예순셋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그는 통일 이탈리아의 탄생에 도움이 된 자랑스러운 시민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동시대 여성으로 뭇 남성의 연인이었던 시인 조르주 상드를 기억할지언정 크리스티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알지 못한다. 열정적이었지만 그 대상이 남성이 아니었기에, 여자처럼 시를 쓰지 않고 남자처럼 철학과 역사책을 썼기에 숭배하던 남성들이 적이 되었던 것이다.
잊혀 슬픈 많은 공주들을 위하여.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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