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의 동향인, 프로이트가 ‘우리들의 진정한 동료’라고 인정했을 정도로 슈니츨러의 소설과 희곡은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윤무>라는 희곡이 재판에 회부됐다. 물리적인 행위로서 섹스를 무대에 올렸기 때문이다. 열 개의 장마다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등장하여 사랑의 행위를 벌인다. 그리고 한 장에 등장하였던 남자나 여자는 다음 장에 다시 등장하여 반대 성의 다른 사람과 성행위를 갖는다. 연극은 마지막 장에서 전장에 등장한 남자가 첫 장에 나오는 여자와 같은 방을 사용하는 것으로 끝난다. 순환을 이루기에 <윤무>이다.
<윤무>의 대사에서는 슈퍼에고와 에고와 이드가 경합한다. 그럼에도 단 한마디의 음란한 대사도 없이 빈 사회의 전반적인 위선을 드러낸 이 작품은 언어를 통한 소통의 불완전성이나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의 모습을 정교하게 그린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첫 무대 공연이 끝나고 재판이 열렸다. 멋진 스타일리스트 슈니츨러는 이렇게 증언했다. “이 재판의 증언 속기록은 우리 시대에 대한 가장 멋들어진 풍자이다. 그 훌륭한 문서에 등장한 네다섯명의 인물은 최고의 풍자가라도 더 위선적인 작중인물을 만들기 힘들 만큼 위선의 전형이다.”
오늘날 성 개방을 찬미하기보다 타락한 사회에 사랑이 없음을 개탄하는 작품으로 <윤무>를 이해한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은 돌고 돈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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