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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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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업을 하던 그는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이라는 일종의 격언집을 발간하여 큰돈을 벌었다. 그 뒤 그는 사업계에서 은퇴하여 대여섯개 정도의 경력을 한꺼번에 시작했는데, 그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성공을 거뒀다. 그는 책을 대여해주는 공공도서관을 미국에서 처음으로 설립했고, 미국 최초의 의용소방대와 우체국도 창설했다. 신문을 창간하여 여론을 주도하기도 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초석을 닦기도 했고, 식민지에서 악명 높았던 인지세를 철폐하는 운동에 앞장서는 정치적 역할도 수행했다. 체스 선수였을 뿐 아니라 체스에 대한 책도 썼다.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던 말년에는 프랑스 주재 대사로 파리에 파견돼 미국과 프랑스의 우호관계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대중에게 소용이 닿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강조하는 허깨비 능력자가 아니었다. 그는 수많은 발명품에 특허권을 출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서전에서 “타인의 발명품으로 우리가 혜택과 즐거움을 누리듯, 우리는 우리의 발명품으로 타인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 개방된 마음으로 자신의 신문도 모든 견해에 열어놓았다. 그는 진정한 능력자였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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