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7.10 20:41
수정 : 2012.07.1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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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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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문화방송>(MBC) 파업이 5개월을 넘겼다. 지난 1월 먼저 시작한 문화방송 파업이 이를 뒤따른 <한국방송>(KBS)과 <연합뉴스>의 파업 종료 시점을 넘어서까지 길어진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대통령,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국회의원,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김재철 사장 등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여권 인사들이 이 공영방송사 조직의 특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어찌 보면 거꾸로 이들이 이 조직의 특성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문화방송의 조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다른 나라의 공영방송 운영 방식을 아는 것이 필요하겠다. 우선 그리스와 스페인 등 남유럽 지역은 정부가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는 ‘정부 모형’의 전통을 갖고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은 정당·노조·사회단체 등 사회집단이 방송에 참여하는 ‘조합주의 모형’이다. 이상적인 것으로 추앙받는 <비비시>(BBC) 등 영국과 북유럽 국가들은 ‘전문가 모형’을 발전시켜왔다. 이 모형은 전문가 문화(professionalism)를 지닌 방송인들이 외부 관여 없이 사회가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행정학자 에바 에치오니할레비는 이 공영방송들이 ‘독립된 공무원 조직의 자율성’을 지닌다고 분석한다. 한국의 문화방송도 전문가 모형에 해당한다.
전문가 모형 방송사들은 사적 영역에서 출발해 점차 공적 기구화한 공통점이 있다. 비비시도 원래 라디오 수신기 사업자들의 컨소시엄이었는데 나중에 공영방송으로 바뀌었다. 문화방송도 사영방송에서 출발해 강탈에 의해 민영 공익재단(5·16 장학회)을 거쳐 1980년에 공영이 됐다. 민영 조직 문화방송은 실무 인력의 자율성이 상대적으로 강한 전문가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관영 한국방송이 공무원 신분이 지닌 상명하복의 전통으로 경직성이 두드러졌던 것과 대비된다. 타사보다 외부 인력의 유입이 적어 강한 내적 유대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전통은 1987년 한국 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노조를 만들어 정권의 개입에 저항하는 등 방송 민주화에 기여하였다. 방송 전문가들은 왜곡된 사회현상을 ‘피디 수첩’ 등 시사교양과 뉴스 프로그램으로 폭로함은 물론이고 창의적 드라마와 오락으로 방송 문화를 선도해왔다. 보도할 것을 못 하게 하고, 창의성을 발휘 못하게 하는 퇴행적 리더십에 대한 현재의 저항도 전문가들로서는 불가피한, 그리고 결연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 세력은 이번 기회에 전문가 문화를 뿌리뽑으려고 작정한 것 같다. 눈엣가시를 빼서 ‘정부 모형’으로 만들려고 하니 이미 정당성을 잃은 사장이 해고와 중징계를 남발하며 버티는 것이다. 순진한 직원에게 파업을 강요하고 있으며, 야당 인사들만 파업 현장을 격려 방문했으니 ‘정치 파업’이라는 궤변으로 신문 광고까지 해대는 현 경영진은 우수한 전문가들을 대표할 수 없음이 자명하다.
방문진이 새로 구성된 뒤 어떻게 한다느니 하며 시간을 끄느니 하루빨리 무능한 경영진은 정리하는 게 옳다. 추후에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자율성을 보장하는 거버넌스 방식을 만드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전문가들이라도 조직이기주의나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도록 책임성을 담보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문화방송은 현대사의 질곡 속에 키워낸 우리의 귀한 자산이다. 방송 역사를 모르는 이들이 함부로 망쳐놓을 것이 아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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