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13 20:05
수정 : 2012.11.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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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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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2008년 2월 말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미디어 전망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공부하고 있는 이론과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의 실제를 접목시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들을 조언해보고자 했다. 한국 문화의 정체성 보호를 위해 미디어 경쟁력을 키우는 방법, ‘미디어 홍수’ 시대에 오히려 미디어에서 소외되고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더 소외되는 이들의 문제, 그리고 쇠락해가는 저널리즘 영역을 지킬 수 있는 방안 등 생각해 볼 만한 주제가 많았다. 그러나 <피디수첩> 제작진에 대한 각종 탄압, 정연주 <한국방송>(KBS) 사장 불법 해임과 기소, <와이티엔>(YTN) 기자 해직, 최초의 공영방송사 3사 노조의 공정성 요구 동시 파업과 해직 등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과거형 주제들이 속속 길을 막았다.
오늘도 처음에는 ‘융합시대의 현실적 저널리즘 모델’에 대해 다루려고 했다. 그러나 또 한 번의 겨울을 맞는 해직기자들과, 직종과 무관하게 엉뚱한 곳에 발령받거나 집체교육을 받고 있는 방송인들이 눈에 밟힌다. 이 중에는 징계가 끝난 뒤에도 서울 신천역 근처 엠비시아카데미에서 행하는 이른바 ‘신천교육대 교화교육’에 끌려가 있는 <문화방송>(MBC) 사람들도 있다. 유능한 방송인들이, 아니 성인들이 본인은 싫다는데도 굳이 교양을 쌓게 해주겠다는 엽기적 사고의 희생제물이 되어 호러 영화 주인공들처럼 ‘샌드위치 만들기’를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추악한 반인륜행위이다. 양심적 행동의 대가로 수개월간의 치욕을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클래식 산책’이나 ‘한식 세계화’ 등의 강요된 교양이 아니라 정신적 치유이다.
베테랑들을 격리시켰으니 방송도 제대로일 수 없다. 최근 문화방송 뉴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방송 사고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안철수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을 검증한답시고 일방적 주장을 나열하여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법정 제재를 받은 것도 상식적 판단을 할 사람들을 죄다 ‘교육대 입소’ 시켰기 때문이다.
극도의 비정상을 해결하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이 물밑 작업을 해왔던 것 같다. 특히, 정부·여당에서 추천받은 방문진 이사가 노조를 만나 중재안을 타결하는 등 문제 해결의 핵심인 김재철 사장 퇴진에 관련해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 자체는 고무적이었다. 추천인의 행동대원이 아니라 공영방송을 감독하는 명망가로서 상식적 해법을 찾으려 하는 것은 오랜만의 공영방송 거버넌스 작동방식이었다. 그러나 중재에 나섰던 여당 쪽 이사에게 여당 대선후보의 선거대책 수장과 청와대 실력자가 전화를 걸어 해임안을 무산시켰다고 한다.
정치권력은 공영방송 독립성 관련 제도를 고치겠다며 상황을 모면할 뿐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율성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당사자들은 “관련 정황만 물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를 믿는다고 해도 권력자들이 민감한 역할을 하고 있는 여권 인물에게 연락해 확인하려 한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압력이다. 문화방송을 현 상태로 두는 것이 여권 후보에게 유리할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박근혜 후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안쓰러운 형식논리를 되뇌고 있다. 상식적 문제 해결의 사례를 이렇게 뭉개버린 것은 공영방송 거버넌스 발전의 전기를 내팽개친 셈이 된다. 선거에도 결코 도움 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변명을 하든지 상식인의 머릿속엔 이미 이 사태에 대한 그림이 절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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