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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27 18:15 수정 : 2012.04.18 08:57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토요판] 리뷰&프리뷰
다음주의 질문
잘라내라 잘라내라 잘라내라
안이하게 잘라내면 가망 없음

4년 전인 2008년 3월23일 오후 2시 박근혜 전 대표가 국회 기자실에 갑자기 나타났다. ‘친박근혜’ 인사들의 무더기 공천 탈락을 비판하는 긴급 기자회견이었다. 눈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속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쩌면 속을 줄 알면서도, 믿고 싶었습니다. 약속과 신뢰가 지켜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속았습니다. 국민도 속았습니다.”

4·9 총선을 코앞에 둔 때였다. 그는 지원유세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대구로 내려갔다.

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행인들에게 구걸을 하던 노파가 있었다. 정신이 약간 오락가락하는 사람이었다. 4·9 총선 전날 저녁 길에서 그 노파와 마주쳤다. 그는 나에게 “박근혜 찍어줘”라고 애원했다. 궁금했다. 물었다.

“할머니, 박근혜는 서울에 안 나와요. 그런데 왜 박근혜를 찍으라고 하세요?”

대답은 짧았다.

“불쌍하잖아.”

동정표가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다. 그랬다. 4·9 총선에선 친박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 153석, 민주당 81석, 자유선진당 18석, 친박연대 14석,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 3석, 무소속 25석이었다. 무소속 중 상당수가 ‘친박’이었다. 한나라당 공천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재오·이방호·박형준·정종복 후보가 낙선했다. 2008년 총선의 승자는 박근혜였다.

정치에서 야당은 쉽고 여당이 어렵다. 공격은 쉽지만 수비는 어려운 탓이다. 2008년 ‘들이받는’ 위치에 섰던 박근혜 전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당의 전권을 한 손에 틀어쥐었다. 이제 ‘들이받히는’ 위치에 선 것이다.

한나라당은 다음주에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한다. 11~13명 규모로 내부 인사는 3분의 1만 들어간다. 위원장도 외부 인사가 맡기로 했다. ‘중량감과 안정감’이 있는 인물을 물색중이라고 한다.

궁금하다. 박근혜 위원장이 과연 공천 물갈이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비상대책위원회 초기에는 당 안팎에 “할 수 있다” “해야만 한다”는 관측이 많았다. ‘디도스 사건’ ‘돈봉투 사건’으로 한나라당이 워낙 궁박한 처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비대위 인선도 그 정도면 파격이었다. 김종인 위원은 비대위 참여 당시 “박 위원장이 대통령 되기 위해 큰 결심을 한 것 같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러나 비대위가 활동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은 “가망 없다”는 비관론이 우세하다. 두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 상황 인식이 안이하다. 분노한 민심은 ‘피’를 요구하는데, 박근혜 위원장은 ‘질서있는 쇄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2008년 한나라당 공천을 반면교사로 생각하는 듯하다. 국민이나 야당보다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더 의식하는 것 같다. 보수연합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과 개혁’은 오간 데가 없다.

둘째, 리더십의 한계다. 박 위원장은 ‘비련의 공주’ 이미지를 갖고 있다. 공주는 손에 물이나 흙을 묻히지 않는다. 정치 스타일도 그런 면이 있다. 박 위원장은 대표 시절 자기 인맥을 구축하지 않았다. 장점은 경우에 따라 단점이 된다. 이번 공천 작업도 공천심사위원회에 전적으로 맡기고 간섭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게 과연 잘하는 일일까? 정치의 본질은 권한과 책임이다.

한나라당은 현역의원 25%를 탈락시키는 공천기준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정도 비율은 그리 혁신적인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지역구 의원 교체 비율은 2008년 38.5%, 2004년 36.4%, 2000년 24.1%, 1996년 39.6%였다.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유권자들로서는 한나라당 현역의원 몇십명 모가지가 날아간다고 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양보다 질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 주요 정치인들을 ‘잘라내고’, 그래서 난리가 나야, 박근혜 위원장의 공천 물갈이는 비로소 관심을 끌 수 있게 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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