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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27 18:23 수정 : 2012.04.18 08:59

[토요판] 리뷰&프리뷰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한겨레>가 인정한 친절한 기자, 노현웅입니다. 오늘은 브로커 끼고 일 벌여 보려는 업자들께 조언을 드릴까 해요. 이국철 에스엘에스(SLS)그룹 회장 이야기와 함께 친절하게 설명드립죠.

이 회장은 나름 입지전적인 사업가였어요. 고졸 학력에 작은 디자인업체부터 시작해 ‘회장님’ 소리 듣기까지 규모를 키워냈습니다. 문제는 거품이 빠지기 직전 무리하게 빚을 내 조선업계에 뛰어들었다는 거예요. 근사한 조선소를 인수하고 보니 선박 수주는 쉽지 않았고, 은행은 보증 내주길 꺼리기 시작했어요. 결국 몇해 버티지 못하고 워크아웃 절차에 들어가야 했죠. 어떻게든 회사를 살리고 싶었던 이 회장은 브로커의 힘을 빌리게 됩니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문환철이라는 사람이에요.

문씨는 슬슬 자리를 잡아가던 브로커 업계의 샛별이었습니다. 특유의 친화력과 성실성으로 여야 정치인, 법조계 인사와 안면을 터가고 있었다고 하네요. 입도 무거운 편이었다 하고, 메모나 기록도 안 남기는 성격이었답니다. 은밀한 일을 도모하기에 믿음이 가는 편이었나 봐요. 그래서인지 이 회장은 문씨를 상당히 신뢰한 것 같습니다. 수십억 돈을 맡겨 위험한 로비를 하려고 했으니까요. “정권 최고 실세한테 돈을 상납해 회사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명목이었습니다.

자, 업자 여러분, 여기부터 집중하세요. 그런데 문씨가 과연 이 회장이 원하는 대로만 움직였을까요? 문씨가 이 회장한테 받은 돈 가운데 이상득 의원실 박배수 보좌관한테 건넨 돈은 6억여원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어디 갔을까요? 실제 문씨와 친분이 있는 후배 브로커는 저한테 “환철이 형이 최근에 ‘현금으로 건물을 하나 사려는데, 마땅한 매물이 없는지 조용히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어요. 문씨가 원래 현금으로 건물을 사들일 정도의 자산가는 아니라는데, 어디에서 그런 뭉칫돈이 나왔을까요? 실제로 먼저 구속된 이 회장은 문씨가 뒤따라 구속되자 매우 즐거워했다고 합니다. “내 돈 털어간 사기꾼 잡혔네”라면서요.

문씨가 이 회장만 속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회장 돈 6억여원을 박 보좌관한테 전달하고는 그쪽에서도 수고비 조로 또 수천만원을 받아냈다네요. “제가 중간에서 이런저런 일 처리했는데, 수고비는 좀 챙겨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는군요. 수천만원이 아쉬운 상황은 아니었을 텐데, 일부러 불쌍한 척한 것 아닐까요? ‘이 회장이 맡긴 돈 전부를 줬으니, 나도 좀 챙겨 달라’는 연기인 셈이죠. ‘배달사고’를 의심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브로커들, 이렇게 간단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실전입니다. 정·관·법조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서초·여의도·광화문의 찻집에 2~3시간씩 앉아 내내 전화기만 붙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십중팔구 하급 브로커입니다. 통화 상대가 누구였는지, 누구와 친밀한 관계인지를 먼저 과시한다면 100%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실속이 없습니다. 대신 적어도 자기 사무실 정도는 유지하는 브로커를 찾으세요. 브로커로 살면서도 나름 재생산 구조를 갖춘 중급 이상은 된다는 뜻입니다. 장소는 여의도 ㄷ빌딩, 아니면 강남·역삼역 근처 오피스텔이 많습니다. 이들 가운데에서도 입이 무겁고, 다이어리·탁상달력·메모 등을 멀리하는 사람들을 찾으세요. 수사기관 입장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 꼼꼼하게 메모하는 사람이거든요. 자신도 수사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세요. 마지막으로 브로커를 통해 로비할 일이 있으면, 한번쯤은 로비 대상한테 “얼마나 받으셨는지, 마음은 흡족하신지”를 넌지시 물어보세요. 브로커 너무 믿다가는 그 사람들 배만 채워줄 수도 있답니다.

▶ 매일 아침, 1면부터 32면까지 신문 전체를 꼼꼼히 읽지만 도대체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건지 알 수 없어서 고민이라는 독자 나꼼꼼씨. 나꼼꼼씨를 위해 ‘친절한 기자들’이 나섰습니다. 전문용어만 즐비하고, 조각조각난 팩트와 팩트 사이에서 길을 잃은 뉴스의 실체와 배경, 방향을 짚어드립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은 궁금한 뉴스가 있을 땐 언제든지 kind@hani.co.kr로 전자우편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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