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03 19:42
수정 : 2012.04.1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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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근 경제부 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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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리뷰&프리뷰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뭐 그리 친절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한겨레> 대표적 범생이 기자 류이근입니다. 친절한 기자로 명 받은 게 저한테 적지 않은 감정노동을 요구할 것 같습니다.
요즘 날씨는 추운데 재벌은 뜨거운 프라이팬에 올려져 있습니다. 세계적인 기술을 갖고서 자동차, 티브이, 스마트폰을 만드는 거대 재벌가의 2, 3세들이 앞다퉈 빵집과 커피숍, 분식집마저 차리자 비난이 거셉니다. ‘돈 되면 다 하는 오징어발(아시겠지만 오징어가 문어보다 통은 작지만 다리는 2개 더 많습니다)식 확장’이 서민경제의 버팀목인 골목상권에까지 미치자 결국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그런데 아세요? 뒤에서 웃는 ‘놈’이 있습니다. 이놈은 살짝 어렵고 복잡해서 보통 사람들의 눈엔 여간해선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재벌 2, 3세들한테는 진짜 대박입니다. 이놈은 일감몰아주기로 불리는 흉측한 놈인데, 말 그대로 돈이 되는 일감을 몽땅 자기편에게 몰아주는 겁니다. 제가 ㄱ휴대전화 회장인데 제 딸이 사장으로 있는 ㄴ사의 휴대전화 액정과 칩만을 사다 쓰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휴대전화 액정과 칩을 만드는 ㄴ사의 경쟁업체들은 ㄱ사에 물건을 팔 ‘공정한 기회’를 빼앗깁니다. 반면에 ㄴ사의 딸은 아버지 덕에 손쉽게 돈을 벌어 부(재산)를 증식시킬 수 있습니다. 임대업, 운송, 광고업 등 물품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온갖 거래에서 가능한 아주 세련된 수법입니다.
자 그러면 실전으로 한번 들어가볼까요?
정몽구, 정의선 부자는 2001년 조그만 상가건물 한 채 값인 15억180만원을 갖고서 글로비스를 세웠습니다. 아들이 최대주주인 이 회사는 주로 자동차나 그 부품 등을 운반합니다. 고속도로에서 조금만 신경써 관찰하면 달리는 화물차 가운데 글로비스라는 로고가 찍힌 트럭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회사를 설립한 지 불과 10년여 만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글로비스의 주식가치(1주당 6만5000원) 총합이 7조원으로 불어난 겁니다. 이런 마술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보여준 혁신에서 나온 건 아닙니다. 바로 일감몰아주기란 ‘부정’한 거래 방식으로 가능했던 일입니다. 글로비스에서 아들이 경쟁자 없이 땅 짚고 헤엄칠 수 있도록 챙겨준 아버지의 진한 ‘부정’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말 부정이 있었던 탓에 현대차 소액주주들이 뿔났습니다. 왜 글로비스에 웃돈까지 얹어주면서 현대차의 운송을 맡겨 회사에 손해를 끼쳤냐는 것이었습니다. 소송에서 진 정 회장은 주주들에게 손해를 물어줬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부당지원을 했다면서 현대차에 과징금을 매겼습니다. 음,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의선씨가 어떤 페널티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글로비스는 특수한 사례일까요? 아닙니다. 이런 몰아주기를 통한 부의 대물림 수법은 재벌가에선 아주 흔한 일입니다. 어느 정도냐면, 현대차와 삼성, 에스케이, 롯데, 엘지 등 29개 기업집단 지배주주 일가의 불과 192명이 몰아주기로 얻은 부의 증가분이 9조9580억원(경제개혁연구소 추정)이나 된다고 합니다. 부럽나요?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해 마련된 세법 개정안은 몰아주기를 통해 부를 증식한 사람에게 증여세란 세금을 내도록 했습니다. 비단 비싸게 사주는 식(또는 싸게 주는 식)으로 자녀 등에게 차익을 안겨주지 않더라도, 일단 일감을 몰아줬다면 수혜자가 세금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빈틈이 왜 없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회사의 100원어치 일감 가운데 몰아주기로 인한 게 최소 30원 이상은 돼야 하는데다, 그것도 30원 초과분에만 세금을 매깁니다. 이러니 수조원의 부를 증식한 이들이 매년 물어야 할 세금은 고작 1000억원 안팎(정부 추정)에 불과합니다. 몰아주기 한다고 ‘쇠고랑’ 차는 일도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재벌의 지배력이 커지는 좁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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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근 경제부 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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