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13 19:08
수정 : 2012.04.18 11:04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국채금리 급등에 또 “국채발행”
부동산 거품·과잉대출이 원인
스페인이 세계경제의 화약고로 떠올랐다. 국내 여론이 총선 정국에 쏠린 사이에 세계 주요국 금융시장은 스페인발 악재로 다시 요동을 치고 있다. 국내 증시와 외환시장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전세계 금융시장을 짓눌렀던 그리스와 같은 처지다. 스페인 사태가 가라앉지 않으면 유로화를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나라들, 즉 유로존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2008년의 미국발 경제위기보다 더 큰 재앙이 다가오는 걸까?
금융시장에선 스페인의 위기 징후를 국채 금리에서 감지한다. 10년짜리 국채 금리가 3월 초부터 급등(채권 가격 급락)세로 돌아섰다. 이달 들어선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6% 선까지 다가섰다. 부도 위험을 뜻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올해 들어 20% 이상 올랐다. 스페인 정부는 오는 19일 또 한차례 대규모 국채발행을 앞두고 있어 유럽 금융계가 긴장하고 있다. 국채가 제대로 소화되지 않거나 금리가 더 오를 경우 스페인은 국가부도 위기에 놓인다. 루이스 데 긴도스 스페인 재무장관은 지난달 말 유럽 재무장관들과 만나 “그리스나 포르투갈처럼 구제금융을 신청하지는 않겠다”면서도 “우리는 공멸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실토했다. 그가 말한 공멸상황은 ‘독일 국채와의 금리차이(스프레드)가 4%포인트 이상 벌어진 상태’이다. 4월 들어 바로 이런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국채의 금리 상승은 시장에서 스페인 정부의 채무 상환 능력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스페인 정부는 신뢰 회복을 위해 올해에만 재정적자를 300억유로(약 34조원) 이상 줄인다는 긴축방안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오히려 ‘재정적자의 악순환’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과도한 재정긴축은 실업 증가와 투자·소비의 위축을 초래한다. 그러면 세수도 줄어 결국 재정수지가 더 나빠지는 악순환의 덫에 걸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 들어 스페인 경제상황이 그렇다. 산업생산은 지난 1월 4.3%(전월 대비) 줄어든 데 이어 2월에는 -5.1%로 감소폭이 커지고 있다. 실업률은 23%까지 치솟았다.
유로존의 4대 경제대국인 스페인은 그리스에 견줘 경제규모가 5배나 크다. 그만큼 위기의 연쇄적 파장도 클 수밖에 없다. 그리스의 부도위기가 ‘폭풍’이라면 스페인은 ‘초대형 태풍’이다. 그럼에도 유럽연합(EU) 차원의 뾰족한 돌파구가 없다. 독일 등 재정여력이 있는 나라들의 구제금융은 이미 그리스와 포르투갈 등에 묶여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돈을 더 찍어 진화하는 방법이 있지만, 전체 유럽의 민간부문을 상대로 한 ‘합법적인 도둑질’인 물가앙등을 감수해야 한다. 역시 쓸 수 없는 카드인 것이다.
스페인 경제위기를 보면서, 국내에선 과도한 정부 지출에 따른 재정수지 악화의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다. 스페인을 거울삼아 재정건전성 유지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지 못하는 피상적 진단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만 하더라도 스페인 경제는 건실해 보였다. 2007년 기준 총생산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36.2%로 유럽 평균치를 훨씬 밑돌았다. 지난해 말 현재 국가부채 비율도 68.5%로 이탈리아나 프랑스보다 낮다. 반면에 복지 수준은 스페인이 유럽에서 후진 나라에 속한다. 예컨대 국민소득 대비 공공의료비 지출규모는 전국민의료보험을 채택하고 있는 유럽 15개국 가운데 꼴찌다. 공공행정서비스 인력의 고용비중은 10%로 스웨덴의 3분의 1 수준이다.
스페인 위기의 뿌리는 부동산 거품과 이를 지탱한 금융기관의 과잉 대출이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두 배 이상 올랐던 부동산 가격이 2008년부터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무더기 금융부실이 발생하고 이를 나랏돈으로 메워준 게 재정위기의 전개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아직도 저축은행 부실과 가계발 금융위기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페인의 오늘은 우리나라의 내일이 될 수 있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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