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9.14 18:41 수정 : 2012.09.25 16:54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지난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의 슈퍼스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내 미셸 오바마였습니다. 2620만명이 텔레비전으로 퍼스트레이디의 명연설을 봤어요. 한국에서는 사회면 뉴스에 등장할 때 빼고는 대통령 부인한테 별 관심이 없잖아요. 미국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은 뭘까? 누가 기사 좀 써주면 읽고 싶은 마음에 토요판 담당자에게 제보를 했는데, 흔쾌히(!) 저더러 친절하게 써보라네요.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입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1933~1945)는 일간지와 월간지에 칼럼을 쓰고, 주간 라디오 쇼를 진행하는 등 역사상 가장 활동적인 퍼스트레이디로 회자돼요. 힐러리 클린턴(1993~2000)보다도 60년이나 앞서 이렇게 전투적인 대통령 부인이 있었던 거예요. 이디스 윌슨(1915~1921)은 남편 우드로 윌슨이 병석에 있을 때 아예 그 역할을 대신 해 ‘속치마 정부’라는 뒷말이 있었어요. 반면 베스 트루먼(1945~1953)은 자신의 역할을 “남편 해리 옆에 조용히 앉아서 모자를 제대로 썼나 확인하는 일”이라고 말할 정도로 소극적이었지요.

왜 이렇게 역할에 차이가 날까요? 미국 헌법에 퍼스트레이디에 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에요. 의무나 책임을 규정해놓은 지침도 없어요. 그래서 조지 부시의 아내 로라 부시(2001~2009)는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은 퍼스트레이디가 원하는 걸 하는 것”이라고 말했지요.

베스 트루먼은 좀 별난 경우고 대부분의 미국 퍼스트레이디는 분야나 방식은 달라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정책이나 의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어요. 국가수반처럼 세계 각국을 방문하고, 백악관 직원들을 고용하거나 해고하기도 해요. 월급은 못 받지만 경비는 처리되지요. 선출도, 임명도 안 됐는데 ‘미국 행정부 최고위직 중 하나’로 때로는 ‘미즈 프레지던트’로도 불리는 실세라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많아요.

반면 아무도 역할을 규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더 어렵기도 해요. 역사학자인 마이라 구틴 교수가 “미국인들은 퍼스트레이디에게 많은 것을 원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일을 해도 욕하고 안 해도 욕한다”고 말했을 정도예요.

개인별 편차가 있지만, 큰 틀에서 시대 흐름에 따른 역할 변화는 있어요. 건국 초기 미국 퍼스트레이디는 영국의 영향으로 인해 여왕, 왕비의 노릇이 중시됐어요. 여기에 백악관 만찬의 주최자, 유행의 선도자라는 역할의 전범을 만든 건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부인 돌리 매디슨(1809~1817)이에요. 돌리는 1812년 영국과의 전쟁 때 개인 소지품을 포기해가며 백악관 서류와 물품부터 지킨 것으로 유명하고, 우아한 패션으로 백악관 안주인의 이미지를 만들었어요. 이때부터 퍼스트레이디의 옷 등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을 모았어요.

텔레비전의 보급 확대, 여권 신장 등과 맞물려 재클린 케네디(1961~1963)는 ‘국제적인 유명인사’로서 미국 퍼스트레이디의 보폭을 넓혔어요. 역대 최강의 패션 감각과 다양한 외국어 구사 능력도 주효했지요. 캠페인 주창자, 특정 정책의 운동가로서 영향력 있는 현대 퍼스트레이디의 시대를 연 것은 린든 존슨의 아내 클로디아 존슨(1963~1969)이에요. 환경보호와 지방 재정비 운동의 선구자였죠.

1980년대 이후 ‘숨은 권력자’ 구실을 언급할 때 로널드 레이건의 아내 낸시 레이건(1981~1989)의 이름이 빠지지 않아요. 낸시는 특히, 남편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친분에 결정적 노릇을 했어요. 이를 통해 전략무기감축협정을 이끌어냈다는 놀라운 평가를 받기도 해요.

엄마이자 아내로서,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키는 전통적인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은 지금도 중시되고 있어요. 그 부분이 부족했던 힐러리 클린턴은 정치력을 인정받으면서도 ‘불편한 퍼스트레이디’가 됐어요. 하버드 출신에 남편의 선배 변호사이기도 했던 미셸이 전당대회에서 ‘엄마 대장’(mom-in-cheif)을 자처한 이유이기도 해요.

아참, ‘퍼스트레이디’라는 명칭의 기원을 깜빡했네요. 이 말은 대통령 아내가 아니라 조카한테 처음 쓰였어요. 제임스 뷰캐넌은 유일한 총각 대통령이었는데, 백악관 안주인 역할을 했던 조카 해리엇 레인(1857~1861)의 이름 앞에 처음 놓였어요. 대통령이 싱글일 땐 딸, 며느리, 여자 형제, 때론 국무장관의 아내도 퍼스트레이디가 됐다네요. 전정윤 국제부 기자 ggum@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리뷰&프리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