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0.26 19:49
수정 : 2012.10.2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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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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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리뷰 & 프리뷰/ 다음주의 질문
대선 앞두고 일부 지식인들 공세
경제민주화 등 개혁논의 뭉개기
‘개혁에 팔을 걷어붙이겠다며…추락하는 경제에 밀려 동반 추락하는 국민의 비명에는 왜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인가.’(조선일보)
‘공정거래법 개정안으로 (기업의) 투자의욕에 찬물을 끼얹고…이런 행태로는 위기에 처한 경제를 살리고 생활고에 허덕이는 민생을 구해낼 수 없다.’(동아일보)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5월 보수 성향의 주요 일간지에 같은 날 실린 사설 한토막이다. 이날 어느 신문은 ‘경제는 수렁에 빠지는데 개혁만 외치나’를 사설 제목으로 뽑기도 했다. 요지는 ‘현재’는 위기이며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개혁정책은 ‘미래’를 더 큰 위기로 몰아갈 것이라는 준엄한 경고다. 이른바 경제정책의 궤도 수정 논의 자체를 한방에 잠재우는 경제위기론이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보수진영이 펼쳤던 총공세의 결정판이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를 50여일 앞두고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될 조짐이 슬슬 나타나고 있다. 지난 24일 자유주의 성향의 지식인 105명이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 모였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지식인 선언 및 기자회견’에 나선 이들은 여야 정치권을 향해 경제민주화 공약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근거는? 역시나 위기다. 경제민주화 따위의 얼치기 개혁은 가뜩이나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 것이라는 게 이들의 확신이다. 아니나 다를까, 경제지를 필두로 한 보수언론들도 경제위기론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들 태세다. 대선을 앞두고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하는 경제위기론은 과연 현실을 온전히 반영한 것일까? 개혁 움직임의 발목을 잡으려는 한낱 속임수일까?
사실 위기란 단어는 속성상 정치적 성격을 강하게 띨 수밖에 없다. ‘현재’ 상태를 정의내리고 현재 상태를 벗어날 ‘해법’까지 제시하려 들기 때문이다. 위기론이 언제나 정치적 공방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건 이 때문이다. 참여정부 초반기를 달군 경제위기론 논쟁이 대표적이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과 보수 성향의 언론들은 이렇다 할 근거도 없이 ‘위기’ ‘불안’ ‘추락’이란 단어를 쉴새없이 쏟아냈고, 국외 언론에 소개된 국내의 음울한 분위기는 다시금 국내 언론으로 즉시 역수입돼 위기론을 확대재생산하곤 했다.
중요한 건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실상이다. 과거의 경제위기론이 ‘증거 부족’으로 판명났다는 사실만으로, 2012년의 경제위기론마저 뻔한 정치적 공세쯤으로 단박에 내칠 수만은 없는 탓이다. 사실 우리 경제에 위기의 경고음이 켜진 건 부인하기 힘들다. 26일 한국은행은 지난 3분기 중 우리 경제가 2분기에 견줘 0.2%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1분기(0.9%)와 2분기(0.3%)에 이어 성장세가 더욱 낮아진 것이다. 이는 최근 몇 년 새 뚜렷해진 대내외 경제환경 악화의 직격탄이다. 미국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로 꼽히는 스티븐 로치 전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은 지난 25일 강연에서 “한국과 같은 수출주도형 경제는 외부수요가 줄어드는 것에 취약하다”며 “세계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위험할 것”이라 내다봤다.
꼼꼼히 따져봐야 할 건 바로 위기의 ‘내용’이다. 위기냐 아니냐보다는, 만일 위기라면 ‘어떤’ 위기인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위기인지를 가려내는 일 말이다. 이 점에서 우리 경제 실상은 위기의 징후가 단지 기업의 일시적인 수익성 하락에 그치지 않고 사회 구성원들의 삶 자체가 흔들리는 지경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양극화 심화로 가계소득은 제자리걸음이고, 가계부채는 가계 건전성을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특히 전셋값 폭등에 따른 월세 전환 추세는 가뜩이나 부족한 가처분소득을 더욱 압박해 구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당연하게도 그 해법은 방향 전환, 곧 ‘개혁’이다.
이 모든 건 위기임을 내세워 결국엔 그 어떠한 개혁 움직임에도 저항하며 기업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는 주장에만 힘쓰는 목소리의 정당성에 의문이 들게 한다. 최근 세계은행조차 우리나라가 이미 세계 8위의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고 인정했다는 사실을, 경제위기론 주창자들은 왜 애써 눈감는 것일까?
최우성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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