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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1.02 18:50 수정 : 2012.11.07 19:56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후보님들~ 세금 올려주면 뽑아줄게요

이전 친절한 기자 코너에서 불친절한 기자로 데뷔한 데 이어 두번째엔 솔직한 기자를 자처했습니다. 이번엔 불편한 기자로 인사드리는 경제부 류이근입니다. 제 얘기는 예쁘게 보면 계몽이고, 나쁘게 보면 선동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99% 리얼’을 추구합니다. 자, 그럼~.

오늘 불편하게 해드릴 주제는 증세입니다. 세금과 관련된 ‘제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오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살기도 팍팍한데 세금 좀 그만 냈으면 좋겠다”는 나와 우리의 근거 없는 푸념, 그리고 “세부담 없이 복지를 팍팍 늘려드릴 테니 제발 좀 찍어달라”는 그들의 거짓된 약속입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정말 세금을 많이 낸다고 생각하십니까? 먼저, 제 월급명세서를 한번 까보겠습니다. 저는 지난해 매달 10만원이 넘는 소득세를 냈습니다. 언뜻 많이 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니 “유리알 지갑인 월급쟁이가 만만한 봉이지”라는 얘기가 나올 법하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연말정산을 거치니 실제 낸 세금이 확 줄었습니다. 제가 회사에서 1000만원을 번다고 가정했더니, 소득세는 연간 18만원이었습니다.(실제 연소득 1800만원 미만 소득자는 소득세를 내지 않습니다.) 어렵게 말하면 제 실효세율(세금/총급여)은 1.8%에 불과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떨까요? 이 글을 읽는 열명 가운데 4~5명은 아예 소득세를 내지 않습니다. 아니 소득이 적어 내고 싶어도 못 냅니다. 근로소득이 있는 분의 40%, 장사를 해서 종합소득세를 내야 하시는 분의 45%가 면세자입니다. 나머지 대여섯 분이 세금을 많이 낸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밥값 등을 뺀 소득의 10분의 1 이상을 세금으로 내는 사람은 장사를 하는 분이든 근로를 하는 분이든 전체 100명 가운데 3명 안팎에 불과한 게 현실입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여러분 대부분이 세금을 안 내거나 아주 조금 낸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집이 있는 분은 재산세, 자동차가 있으신 분은 자동차세를 별도로 더 내실 수 있습니다. 얘기가 끝없이 꼬리를 물 수 있습니다. 물건을 사면 부가세가 포함돼 있지 않냐,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준조세가 있지 않냐고요. 그래도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세금을 ‘적게 내도 너무 적게’ 내면서 살고 계십니다. ‘세금폭탄’이란 말에 한번이라도 심정적으로 공감하셨다면, 지금껏 속고 살아오신 겁니다.

한번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까요? 선진국 클럽이라고도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세부담률은 평균 25%에 육박합니다. 그런데 저희는 아직 19%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조세부담률이란 세금이 국민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뜻합니다.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한가하게 무슨 세금 얘기냐고요? 죄송하지만, 그럴수록 “세금을 더 올리자!”고 외치시는 게 남는 장사입니다. 왜냐고요? 소득이 낮을수록 낸 것보다 돌려받는 게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중산층을 자처하는 저만 해도 작은애 유치원비와 큰애 급식비를 합치면, 제가 낸 세금보다 더 많이 돌려받습니다. 아마 상위 20% 안에 드는 계층이 아니라면 저와 비슷할 겁니다.

이제 그들의 얘기를 해볼까요? 대선 ‘빅3’ 후보 모두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증세 없는 복지’, ‘증세는 최후의 카드’, ‘증세는 마지막 단계’. 세금 올리면 표 달아날까봐 그러는 줄 이해는 합니다. 조선시대엔 세금 때문에 민란도 있었습니다. ‘증세를 증세라 부르지 못하는’ 길동이의 안타까운 처지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나와 우리의 근거 없는 푸념을 의식한 비겁함에 가깝습니다. 말이야 좋죠. “이쪽 예산을 저쪽으로 돌리고, 비과세 감면을 줄이면 충분히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후보들이 약속한 복지란 게 매년 30조~40조원의 재원을 추가로 확보해야 가능합니다. 더군다나 증세 없인 복지가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대선 후보 캠프 밖에 있는 제가 아는 전문가 모두 그렇게 얘기합니다.

증세를 해도 여러분이 더 낼 세금은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복지를 원하신다면 증세를 겁내지 마세요. 그리고 “증세 없이 복지가 가능하다”는 정치적 수사도 믿지 마세요. 미안한 얘기이지만, 부자 기업과 부자 개인의 몫이 클 뿐입니다. 피켓 들고 시위라도 하세요. “세금 더 내자는 사람 뽑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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