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성공으로 결론난 올해 미국 대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어. 각종 여론조사에 근거해 전체 51개 주 가운데 50개 주의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네이트 실버(34)라는 인물이지. 나머지 1곳은 한국시각 9일 정오까지도 공식 집계 결과가 나오지 않은 플로리다인데, 실버는 이곳에서도 박빙 속에 오바마의 승리를 예견했으니 맞힌 셈이야.
실버의 예상 득표율도 거의 정확했어. 하와이와 웨스트버지니아 단 2곳만 제외한 나머지 모든 주에서 두 후보의 득표율을 오차범위 안에서 맞혔어. 하와이와 웨스트버지니아에서도 실버의 예상보다 약간 큰 표차로 승부가 갈렸을 뿐, 아주 어긋난 예상을 내놓은 건 아냐.
미국 언론에서 네이트 실버를 칭찬하는 기사들이 날마다 쏟아져. 선거 당일 <엠에스엔비시>(MSNBC)의 유명 진행자 레이철 매도는 “오늘 선거에서 누가 이겼는지 아세요? 네이트 실버예요”라고 말하기도 했지.
광적인 야구팬인 네이트 실버는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위한 야구선수 성적예측 시스템(PECOTA)의 개발자로 첫 명성을 얻었어. 철저히 통계에 근거한 시스템이었지. 야구에선 통계가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해. 선수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공을 따라다녀야 하는 여타 구기종목과 달리, 야구는 공이 수비수의 글러브 안에 머무는 순간이 많잖아. 야구는 그런 순간이 이어지는 종목이라서, 각종 정지 상황에서의 통계가 중요한 거야.
야구를 보면, 투수는 방어율, 승·패율, 세이브(구원), 탈삼진, 이닝(회) 등의 기록이, 타자는 타율, 타점, 홈런, 안타, 도루, 득점, 장타, 출루 등의 통계가 자주 언급돼. 볼카운트별 타율이라거나, 특정 타자에 대한 방어율, 특정 투수에 대한 타율 등 특정 경우에 한정한 세부 통계도 있지. 야구는 ‘통계의 스포츠’, ‘기록의 스포츠’라는 말이 과장이 아냐. 야구에서 통계가 절대적이진 않아도 승리의 확률을 극대화하는 이런 특성에 착안한 실버가 통계 시스템을 고안한 거야.
실버는 이를 기반으로 2007년부터 정치 분석에도 나섰어. 처음엔 재미로, 익명으로 한 일이었지. 이때도 가장 중요한 근거는 통계였어. 그는 일단 여론조사기관을 정확도 순서로 점수를 매기고, 이에 따라 각 기관의 여론조사 결과에 가중치를 줬어. 그리고 인구 통계와 과거 투표 형태에 기반해 득표 예상치를 냈지. 예상치는 적중했어. 2008년 대선은 인디애나주를 제외한 모든 주의 결과를 맞혔어. 실버는 정치권에서도 이름을 널리 떨치게 됐고, 선거 예상을 공유했던 ‘파이브서티에이트닷컴’(538.com)이라는 그의 블로그는 2010년 <뉴욕 타임스>와 독점계약을 맺었어.
미 대선의 전체 선거인단 수(538명)에서 이름을 딴 이 블로그는 이번 대선에서 뉴욕 타임스의 온라인 수익에 톡톡한 효자 노릇을 해. 올해 초엔 정치 기사를 읽으려고 뉴욕 타임스에 접속한 독자들 가운데 10~20%가 538닷컴을 방문했는데, 선거 전주엔 그 수치가 무려 71%로 치솟았어. 이번 선거 결과에서도 실버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그 명성은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지겠지.
실버가 이렇게 정확한 투표 예상을 내놓을 수 있었던 건 여론조사 결과가 비교적 정확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거야. 실버도 결국 그 여론조사들을 기초자료로 삼아서 잘 취합하고 분석한 거니까. 그가 최근 휴대전화 사용층 조사가 미흡하다고 지적한 걸 보면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여론조사는 확실히 우리보다 나은 지점이 몇가지 있긴 해.
우선, 우리와 달리 선거에 앞서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 등록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최종 결과에 비교적 가깝게 나타나겠지. 우리 경우엔 모두가 투표에 참여한다는 전제로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다 보니 한계가 있다는 거야.
문화적으로 미국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밝히고 정당을 지지하는 걸 떳떳하게 여기는 점도 한국과는 달라. 우린 역사적으로 억압적인 정권과 분단 현실 등의 이유로 그러기가 힘들었던 게 사실이니까. 한국 정치 역동성이 활발해 변화가 빠르게 나타난다는 점도 여론조사에는 불리해. 미국처럼 2~3일 시간을 갖고 표본집단을 제대로 꾸리면서 실시한 여론조사는 확실히 다를 테지.
하지만 누가 뭐래도, 야구가 됐든 선거가 됐든 수치로 나타나는 게 전부는 아닐 거야. 야구에서 선수들의 남모를 눈물과 땀방울이 수치에 직접 반영되진 않듯, 여론조사 답변자 1명도 숱한 망설임과 깊은 고민을 거쳐 ‘그’를 지지하는 걸 테니까.
김외현 정치부 정당팀 기자 oscar@hani.co.kr[한귀영의 1 2 3 4 #6] '투표하라 1997'··· 30대 표심 심층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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