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2.01 20:25 수정 : 2013.02.14 09:33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대북심리전이라는데 누리꾼 심리가 불편~

안녕하세요. 사회부 24시팀의 정환봉 기자예요. 요즘 국가정보원이 뭇매를 맞고 있어요.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29)씨가 인터넷 유머 게시판에서 대선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도 국정원을 칭찬할 부분도 있어요. 직원들이 어디로 출근하든 정시 출근과 정시 퇴근을 보장하는 ‘꿈의 직장’이라는 점이에요. 김씨가 유머 게시판 ‘오늘의 유머’(오유)에서만 91건의 게시물을 작성하고 다른 사람의 글에 244번 찬반 표시를 한 시간을 보면 다섯번을 빼곤 모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예요. 주말이랑 국경일엔 꼬박꼬박 쉬었어요. 사실 조금 부러웠어요. 그나저나 하루 종일 첩보활동하고 저녁에는 사격 연습하고 새벽에는 브리핑 준비하는, 그런 국정원 직원은 영화나 드라마에만 있나 봐요. 때마침 국정원을 무대로 한 드라마 <7급 공무원>도 방영되고 있어요. 사실성을 높이려면 인터넷에 댓글 달다 ‘칼퇴근’하는 장면을 넣어야 해요.

이번 사건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요. 맞아요.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인정해야 해요. 하지만 국가기관이 ‘여론조작’ 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오히려 국정원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무시무시한 국정원이 내가 인터넷에 쓴 글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 놓고 글 한 줄 쓰기 두려울 테니까요. 피해자는 김씨가 아니라 20만명이 넘는 오유 이용자들이에요. 그런데 국정원은 오유를 종북 사이트로 몰고 있어요. 종북 글이 많이 올라오니 그걸 찾아내기 위해 김씨가 오유에서 활동했대요. 뻔뻔한 2차 가해예요. 국정원의 설명대로라면 김씨가 글을 쓴 걸로 확인된 중고차 매매 누리집 ‘보배드림’도 종북 사이트가 돼요. 국정원에는 모든 게 종북으로 보이나 봐요.

국정원은 처음엔 김씨의 ‘인터넷 활동’을 개인 취향으로 설명했어요. 하지만 김씨가 꼬박꼬박 업무 시간에만 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부랴부랴 말을 바꿔요. 김씨가 ‘대북 심리전 활동’을 했대요. 정상적인 업무래요. 순간 멍~했어요. 왜 한국은 인터넷에서 전쟁을 치르는 걸까요. 무서워요.

뭇매를 맞으면서도 국정원은 국내 사이버 공간에서 대북 심리전을 계속하겠다고 말해요. 지난 31일 국정원은 “(김씨가 쓴) 글들을 정치적 목적으로 게재했다고 오도하는 것은 오히려 정보기관의 대북 심리전 활동을 위축시킴으로써 북한이 우리의 사이버 공간에서 더욱 활개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줄 수 있다”고 발표했어요. “북한의 사이버 선전선동에 대응하여 국민들의 혼란을 예방하고, 국가 정체성을 수호하는 대북 심리전 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도 말해요.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는 말이에요. 은근슬쩍 열심히 댓글 다는 우리를 건드리지 말라는 ‘협박’도 섞인 거죠.

고집만큼은 인정해요. 하지만 김씨가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성과를 칭송하면서 “엠비(MB)는 진짜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스타일인 듯”이라고 쓴 글이 대북 심리전이라는 건 이해가 안 가요. “무디스에 이은 피치의 국가신용등급 상승 소식! 내 신용등급 상승도 아닌데 기분이 좋다. 유치하지만 일본보다 한 등급 위라는 것도 신난다”라는 글도 마찬가지예요. 4대강 사업 찬성과 불심검문 옹호도 ‘종북 척결’이라는 국정원의 사명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국내 정치에만 관심이 많으니 국정원의 대북 정보력이 떨어졌다는 소리를 들어요. 유머 게시판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꼼꼼히 살피면서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쏘아올린 건 모르고 있었어요. 김정일 사망 소식도 북한 방송 보고 알았다고 해요. 국정원 체면이 말이 아니에요.

국정원은 이제라도 제 길을 가면 좋겠어요. 시기도 나쁘지 않아요. 새 정부가 들어서는 만큼 과거는 털고 새롭게 시작하는 거죠. 그러려면 이번 사건을 명백히 밝혀야 해요. 국정원은 정보기관이기 때문에 수사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사건을 제대로 밝히려면 국정원이 스스로 고백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에요. 이제는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김씨가 소속된 국가정보원 3차장 산하 심리전단의 ‘진짜’ 업무가 무엇인지 말이에요.

정환봉 사회부 24시팀 기자

[핫이슈]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리뷰&프리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