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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08 15:08 수정 : 2013.03.08 19:43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안보리 결의는 1994년 북폭 구상 버금
위기 자초한 김영삼 정부 답습 말아야

북한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단골 대남위협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불바다’ 위협은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려 했다는 1994년 북핵위기 상황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1년 넘게 영변 핵시설 사찰로 마찰을 벌였다. 1994년 3월15일 원자력기구의 사찰단 철수로 파국이 왔다. 나흘 뒤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에서 박영수 북한 대표는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다. 전쟁이 나면 불바다가 되고 만다’고 위협했다.

문제는 이것이 북한이 의도한 공개 위협이 아니었다는 거다. 이틀 전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촉구했다. 이에 북한 쪽은 회담에서 ‘전쟁을 해서는 안되지 않냐’며 ‘전쟁이 나면 판문점에서 멀지 않은 서울은 불바다가 된다’고 말했다는 거다. 이를 우리 쪽이 그 부분만 공개했다.

불바다 위협은 즉각 반향을 일으켰다. 라면 사재기가 벌어지는 등 전쟁위기가 고조됐다. 이 사태는 빌 클린턴 당시 미 행정부의 북핵 강경대응을 더욱 자극해, 영변 핵시설 폭격 구상으로까지 치달았다. 결국 김영삼 대통령은 클린턴에게 전화를 걸어, 북폭 포기를 요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의도하지 않았던 불바다 발언의 효과를 경험했던 북한은 남북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한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 매년 불바다 위협을 반복했다. “대남 선제타격이 개시되면 (수도권과 청와대는) 불바다가 아니라 잿더미가 된다”(2008년 3월30일 조선중앙통신 군사통신원), “씨도 없이 다 태워버리는 복수의 (수도권) 불바다를 보게 될 것”(2011년 12월 30일 국방위원회 성명), “청와대이건 인천이건 다 불바다에 잠기고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한다”(2012년 3월 4일 김격식 당시 북한군 4군단장, 현 인민무력부장), “서울 한복판(수도권)이라 해도 그 모든 것을 통째로 날려보내기 위한 특별행동조치가 취해질 것”(2012년 4월 18일 북한군 최고사령부).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통과되기 직전인 지난 5일 김영철 정찰총국장은 “조선정전협정의 효력을 전면 백지화해버릴 것”이라는 북한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6일에는 <로동신문>에서 “정밀 핵타격 수단으로 서울뿐만 아니라 워싱턴까지 불바다로 만들 것”(정현일 인민군 소장)이라고 다시 불바다 위협을 추가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으름장을 놓던 2008~2012년 때와는 달리 이번 북한의 불바다 위협에는 마주치는 손바닥들이 있다. 북한 핵 활동 관련 선박과 항공기 검색을 의무화하는 등의 안보리 결의 2094호는 지난 94년 미국의 북폭 구상에 버금간다. 정부 출범도 제대로 못하는 박근혜 정부의 입지도 당시 김영삼 정부와 유사하다.

김영삼 정부는 당시 북한 출신 장기수 이인모씨를 북송해주는 등 대북유화정책을 펼쳤으나,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으로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했다. 보수세력들의 비판을 받던 김영삼 정부는 불바다 발언 공개로 일순간에 대북강경책으로 돌아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데 야당이 정부조직법 개편을 막으며 발목을 잡고 있다고 손까지 부르르 떨며 비난했다. 북한은 박 대통령에게 호응이라도 하듯, 8일 다시 ““조선정전협정이 완전히 백지화되는 3월11일 그 시각부터 북남 사이의 불가침에 관한 합의들도 전면 무효화될 것을 공식 선언” 했다. 전날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연평도 포격사건의 무대인 서해안 기지들을 시찰했다. 그는 “서해 5개섬에 증강 배치된 적들의 새로운 화력타격수단과 대상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재확정하고 정밀타격순차와 질서를 규정해줬다”고 한다.

94년 북핵위기 때처럼 서로 위협과 제재를 반복하며 강도를 높이는 상황이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미국이 그 때와는 달리 구체적 강경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94년 때 위기를 증폭시킨 김영삼 정부가 느꼈던 유혹을 박근혜 정부가 뿌리칠 수 있냐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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