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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10 20:48 수정 : 2013.05.10 21:48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오른쪽)와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가 7일 오후 국회에서 경제민주화법을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한 합의문을 작성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토요판] 리뷰&프리뷰 다음주의 질문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마치고 10일 귀국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동맹 강화를 확인하는 등 한반도 위기상황 속에서 나름의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귀국길 박 대통령의 마음은 가볍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스캔들 탓만이 아니라 방미 기간 내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남양유업 사태로 상징되는 갑을문제 때문이다.

영업사원의 폭언과 물량 밀어내기 영업 실상이 담긴 동영상 파일로 촉발된 남양유업 사태는 한마디로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갑을구조의 현실 모순이 한계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경고신호다. 남양유업 사태가 터진 이후 흔히 ‘을의 반격’으로 표현되는 각계의 공분이 쏟아진 게 이를 입증한다. 갑을구조의 근본적인 개선을 계속 미룰 경우 머지않아 대폭발로 이어질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양유업 사태는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갑을구조를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재벌 계열 대형유통업체의 한 전직 간부는 남양유업의 담당 영업사원이 회사를 그만뒀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실적 압박에 시달리며 부담을 대리점에 전가할 수밖에 없는 영업사원은 갑을구조의 한 고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얼마 전 롯데백화점 한 의류매장 매니저의 자살엔 과도한 매출 강요가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또 편의점 가맹점주들은 본부의 무리한 중복 출점, 과도한 점포확장이나 인테리어 강요로 인한 피해에 관해 하소연하고 있다. 공정위의 대형유통업체 실태조사에서는 납품업체 10곳 가운데 7곳꼴로 서면 약정에도 없는 판촉행사 참가 강요, 판촉비 부당전가 등 각종 불법행위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소기업 간 하청거래가 많은 제조업 분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는 부품업체들한테 잘못이 없는데도 납기가 이미 지난 시점에 일방적으로 발주를 취소하는 불공정행위를 하다가 공정위에 적발됐다. 현대차는 정비가맹점들에 리뉴얼(새단장)을 지시하면서 인척관계인 특정 가구업체의 물품을 구입하도록 강요했다가 역시 적발됐다.

갑을구조 문제의 핵심이 경제적 강자가 경제적 약자의 권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해법은 이미 우리 사회에 제시돼 있다.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 혁파가 장기적 과제지만, 당장은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국민적 합의를 이룬 경제민주화가 핵심 열쇠다. 박근혜 정부가 채택한 140개 국정과제 중 28번째가 다름 아닌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다.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국회에서의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은 우려스런 상황이다. 공정위가 개정을 추진중인 경제민주화 관련 3대 법만 봐도 4월 국회에서 처리된 것은 대기업의 부당 납품단가 인하 등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한 하도급법이 유일하다. 가맹점주의 권리 강화를 위한 가맹사업법과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공정거래법은 6월 국회로 넘어갔다. 재벌의 반발과 이에 동조하는 새누리당의 태도를 볼 때 6월 국회 전망도 지극히 불투명하다. 정치권은 갑을구조 혁파를 위한 새로운 법안 제정을 추진중이다. 하지만 이미 국회에 올라온 법안도 처리를 못하는 상황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갑을구조 혁파의 열쇠는 결국 대통령이 쥐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국회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논의에 대해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며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을 일으켰다. 정부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렸을 때의 말로는 역사가 잘 보여준다.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에 소극적이면서 갑을구조를 어떻게 혁파할 것인가?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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