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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17 20:01 수정 : 2013.05.17 21:26

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님의 침묵>, 한용운 지음, 을유문화사, 1994

시인에게 교과서에 작품이 실리는 것이 영광이기만 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졸업 후 “국어책에 나왔었다!”고 읽는 경우는 드물 것 같다. 게다가 입시를 상정하므로 ‘바람직한’ 그러나 예술로서는 치명적인, 감상의 정답을 갖게 된다.

‘님의 침묵’에서 님은? 답: 조국. 단골 시험 문제다. 사실, 민족과 조국은 입시용으로도 틀린 답이다. 침묵은 침략당하기 전이고, 식민지 조국은 신음하거나 저항하는 등 목소리가 있다. 침묵 상태가 아닌 것이다. 고교 시절, 선택 문항 중에 ‘애인’이 있었다. 사지선다형 시험에는 출제자의 피로가 묻어나는 황당한 선택지가 있기 마련인데, “애인이라고 찍은 애도 있을까”라며 웃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밝힐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연인이 진짜 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시집 <님의 침묵>(1926년 최초 발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걷잡을 수 없는 ‘사랑 타령’이다. 그것도 “나의 가슴은 말굽에 밟힌 낙화가 될지언정…”(137쪽)처럼 피학적이고, 님은 듣거나 말거나 일방적이다. ‘애국시 님의 침묵’만 생각하다가 시집 <님의 침묵>을 읽으면 당황할지도 모른다.

<님의 침묵>은 절절하지만 연애편지용 연시는 아니다. 이런 시를 받으면 겁날 것 같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알 수 없어요’)”, “나는 영원의 시간에서 당신 가신 때를 끊어내겠습니다(‘당신 가신 때’)”, “당신의 사랑의 동아줄에 휘감기는 체형(體刑)도 사양치 않겠습니다(‘의심하지 마셔요’)”.

이 작품의 전통적인 논점은 입시 패러다임대로 님이 누구냐는 것이다. 해설자(문덕수)처럼 “불타(佛陀), 본체, 자연, 진실, 조국, 절대자, 무한자, 민족, 깨달음 등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므로 작품 하나하나를 통해 님의 정체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7쪽). 그런데 “님의 정체를 파악”해서, 시인의 본심을 알아서 무엇할까. 시인 자신도 모를지 모를 텐데.

나의 관심은 ‘님이 누구냐’가 아니라 ‘님’과 ‘침묵’의 의미다. 모든 예술은 남겨진 자의 고통에서 시작된다. 떠나는 사람이 “나는 너를 버렸노라~”고 읊는 경우는 없다. 떠난 자는 말이 없다. 대단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부재하니까 침묵인 것이다. 반면 남겨진 자의 눈물은 마를 길이 없다. 그리움, 슬픔, 체념, 자책, 희망, “십리도 못 가 발병 난다”는 저주까지. 그래서 예술은 고통받는 사람의 필요요, 특권이다.

왜 같이 살까 싶은, 죽음만이 그들을 갈라놓을 수 있을 것처럼 맹렬히 싸우는 커플도 있고 대화만으로 오르가슴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말을 섞는 것은 살을 섞는 것보다 훨씬 육체적인 행위다. 대화는 상대의 몸에 삼투압을 일으키고 화학은 인간을 변화시킨다. 이러한 몸의 변용이 인생이고, 삶이 고해인 이유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며 그런 이를 만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드물게 ‘그 사람’을 만났다 해도 사랑과 제도는 상극이다. 이성애, 가족, 계급은 최고의 제도 권력으로 진정한 사랑을 방해한다. 대화 이전에 이미 각종 갑을로 설정된 관계 자체가 스트레스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는 혼자 말을 한다. 절대자에게, 돌아가신 부모님께, 반려동물에게, 나무, 바람, 돌에게. 그들은 내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기도, 명상, 일기, 중독도 독백의 일종이다. 침묵은 님의 조건이다. 님은 실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한다. <님의 침묵>에서 님이 아닌 이는 실제 인물인 논개(論介) 정도다. 논개는 “애인”, “그대”지 님이 아니다(90쪽).

그렇다면 ‘님의 침묵’의 의미는? 절대자에 대한 사랑일까. 유물론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절대자는 없다. 인생에서 유일한 절대자(絶對子)는 죽음뿐. 절대자(絶對者)는 인간의 인식 안에서만 존재한다. 사람마다 절대자가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님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즉, 님은 대상이 아니라 자아이다. 침묵하는 자아인 동시에 침묵을 뿜으며 더 깊은 침묵을 만들어내는 자아. 마지막, 님의 사랑과 침묵은 범람한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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