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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31 20:16 수정 : 2013.05.31 21:42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금융산업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과 그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 깊은 증오를 키워왔다. 그들은 그의 통화완화 정책들이 끝나기를 바라고, 그 정책이 극적으로 실패하는 것을 보기 원한다.”

대표적 미국 경제학자 중 한명인 폴 크루그먼은 5월초 <뉴욕 타임스>에 ‘버냉키, 거품의 조성자?’라는 칼럼에서 버냉키 의장이 주도하는 미국의 돈풀기 정책이 완화돼야 한다는 비판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매달 850억달러의 채권을 매입해 돈을 푸는 연준 정책의 방향을 놓고 전세계 시장이 주시하고 있다. 이제 그 정책을 완화하거나 그만둬야 한다는 쪽과 계속해야 한다는 쪽이 격돌하고 있다. 5월초 미 연준 안에서도 양적완화 축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면서, 양적완화 수정은 이제 시간문제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이 정책의 축소나 중지를 요구하는 쪽은 이제 미국 경제가 회복세라서 이런 식의 돈풀기를 계속한다면 인플레와 거품이 다시 덮칠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1970년대 통화긴축 정책으로 인플레 대처를 주도한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그는 29일 출구전략, 즉 돈풀기 정책의 중지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며 “지금까지는 (인플레 전선에) 문제가 없을지 모르나 (인플레가)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통제 불능인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반대쪽 진영의 대표자 격인 크루그먼은 이런 주장을 일축하는 데서 더 나아가, 월가와 부자들의 음모라고까지 반박한다. 그는 금융위기 이후 돈풀기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플레는 1% 이하로, 위험스러울 정도로까지 낮다는 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떨어지는 인플레는 미국 경제가 여전히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취약한 경제가 노동자 등 대중들의 임금을 낮추고, 이는 또 구매력을 감축해, 경제 취약성을 배가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현재 양적완화 중단을 주장하는 쪽은 이 정책으로 곤궁에 빠진 월가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문제를 결정할 바로미터는 현재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견실하냐이다. 하지만 최근 나온 각종 경제지표들이 엇갈리고, 그 해석도 다르다. 금융위기의 근원지인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지난 1년 사이 10% 가까이 오르는 등 긍정적 지표가 있지만, 올해 1/4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예상보다 낮게 나왔다.

논란의 기저에는 경제를 둘러싼 철학적 계급적 입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크루그먼 같은 자유·진보적 인사는 돈풀기와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통해서 대중들의 부채부담을 줄이고 구매력을 높여 경제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정책을 통해서 먼저 살아난 월가 금융자본들이 이제는 다시 돈놀이를 하려고 통화긴축을 주장한다고 비판한다. 또 대기업과 대자본들은 이제 시장의 독점력을 가진 상태여서 아쉬울 것이 없는 상태라는 분석이다. 돈풀기를 통한 인플레는 오히려 노동자들의 임금 교섭력을 높이는 등 노동에 대한 통제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크루그먼은 현재 대대적인 돈풀기를 통해서 인플레를 ‘조장’하는 데까지 나아간 일본의 아베노믹스에 찬성의 입장까지 보인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버냉키 의장은 지난 22일 의회 증언에서 양적완화 정책을 너무 일찍 중단하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라고 방어선을 쳤다. 버냉키와 연준이 당장 돈풀기 정책의 방향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수정 압력은 찬바람이 불면서 높아질 것이다. 금융위기 뒤 종언을 고했다는 월가의 금융자본은 아직 여전한 것 같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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