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31 20:19
수정 : 2013.05.3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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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웅 경제부 정책금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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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척박한 세종시에서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를 출입하고 있는 노현웅입니다. 오늘은 제가 지난해부터 주야장천 기사 쓰고 있는 철도민영화(경쟁체제 도입) 문제에 대해 말씀드릴까 해요.
국토교통부는 최근 철도민영화 방안의 얼개를 밝혔습니다. 코레일을 철도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그 아래 여객운송 자회사를 만들어 수서발 케이티엑스(KTX)를 맡기겠다는 내용입니다. 자회사의 코레일 지분은 30% 미만으로 하고, 국민연금 기금 등 공적 자금이 나머지를 보유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 철도민영화 관련 기사를 읽으신 분들은 좀 헷갈릴 수도 있겠다 생각됩니다. 기사가 ‘널을 뛰는’ 상황이거든요.
미디어 비평,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번 <한겨레>와 <조선일보> 기사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지난 5월24일치 <조선일보>는 이러한 방안에 대해 “철도시장에 경쟁을 도입하기보다는 기존의 공기업 독점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부분적으로 시장을 개방하는 독일식 모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조선일보> 12면에 실렸던 이 기사의 제목은 “국토부, 결국 코레일 독점체제 유지”였네요. 같은 날 <한겨레>는 16면에 “코레일 지주회사 전환, 민영화 수순 밟나”라는 기사에서 “지분 구조를 열어두는 것은 결국 민영화로 가는 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제가 쓴 기사였죠.
이처럼 해석이 엇갈린 이유는 국토부 계획이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수서발 케이티엑스의 운영을 맡게 될 자회사는 민간기업이 참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공기업도 아닙니다. 공기업 보유 지분이 30%를 넘으면 철도 자회사 역시 공기업으로 지정할 수 있지만, 국토부는 코레일 지분은 30% 미만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제2철도공사와 민간기업의 절충안인 셈입니다. 이 상황에 대해 <한겨레>는 “결국 민영화 수순”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간 철도민영화 추진 맥락 때문이었습니다. 국토부는 2009년부터 철도민영화를 추진해 왔습니다. 비공개로 연구 용역을 맡기는 등 물밑에서 준비를 하더니, 2011년 말부터는 국면을 전환했습니다. 철도 담당 국장과 과장 등 간부진을 ‘돌격대 스타일’로 교체하더니, 12월27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2012년에 철도민영화를 해내겠다”고 보고했습니다. 2012년 1월초에는 민간사업자를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를 열었고, 상반기 중에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시민사회와 야당, 철도노동자들이 반발하자 별 꼼수를 다 부렸습니다. 트위터와 댓글 등을 이용해 철도민영화 찬성 여론을 조성하려는 ‘국정원 못잖은’ 시도도 했고, 그래도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자, 코레일이 소유하고 있는 철도역사·부지 및 관제권을 환수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모든 움직임이 철도민영화 한길을 향했던 것입니다.
물론 새 정부가 들어서고 국토부의 분위기는 바뀌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이 동의치 않는 민영화는 없다”고 단언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추진 경과를 보면, ‘돌고 돌아 도로 민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토부는 자신들이 전면에 나설 경우 논란이 일 것이라 예상하고, 민간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민간위원회 의견을 국토부가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택한 겁니다. 이 민간위원회, 정부의 민영화 정책에 찬성했던 분들 일색입니다. 이분들은 언론에 기고해 적극적으로 민영화 찬성 의견을 피력하거나, 국토부와 함께 유럽 철도기업을 방문하는 등 깊은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결국 민간위원회에 포함됐던 민영화 반대론자(20명 가운데 5명)는 민간위를 탈퇴했습니다.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국토부의 진정성을 의심할밖에요. 과거 사례를 봐도 그렇습니다. 케이티(KT) 등이 민영화된 과정을 보면 언제나 지분이 동원됐습니다. 정부와 공적 자금이 당장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이를 시장에 넘기는 건 한순간입니다.
지난해 5월 처음 경제부에 온 뒤로 1년 동안 30여건의 철도민영화 기사를 썼습니다. 1년 내내 버전을 바꿔 추진하는 철도민영화 계획을 폭로하고, 지적하고, 비판했습니다. 국토부가 <한겨레>에 이런 내용을 알려줄 리도 없으니, 그 형식은 항상 ‘<한겨레>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문건을 입수해 숨겨진 계획을 알리고, 비판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솔직히 지겹기도, 지치기도 했습니다. 국토부의 집요한 추진 과정을 보면, 스스로 되돌아보게 된답니다. 친절한 만큼 집요해야 되는 거 같아요. 암튼 저는 이 문제는 끝장을 볼 겁니다. 산간·벽지를 잇는 유일한 교통망이라는 점에서, 해운을 대신할 물류의 대안이라는 점에서, 환경 부담이 가장 적은 대중 교통이라는 점에서, 공공성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독자분들도 계속 응원해 주셔야 합니다. >_<
아! 그리고 얼마 전 술자리에서 저한테 ‘입수전문기자’라고 놀린 국토부 관계자님, 저도 국토부처럼 버전을 달리해가며 악착같이 기사 써드릴게요. 이렇게 자극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현웅 경제부 정책금융팀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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