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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07 20:16 수정 : 2013.06.07 23:50

이승준 경제부 산업팀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우리 그냥 에어컨 사지 말까?”

올해는 에어컨을 사야겠다고 인터넷을 뒤지던 아내가 얼마 전 “에어컨을 사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매일 전력난 기사를 쓰며 끙끙대는 남편이 딱해서 그런 건지, 수시로 나오는 “원자력발전소 3기 정지로 블랙아웃 공포” 같은 뉴스들만 봐서인지 그냥 하는 소리 같진 않았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이렇게 ‘애국심이 돋는데’ 왜 매년 전력난에 스트레스를 받고 시달려야 한단 말입니까?

안녕하세요.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와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전력거래소 등을 출입하는 경제부 산업팀 이승준 기자입니다. 그동안 전력 기사를 친절하게 쓰지 못한 것을 깊이 반성하며 ‘친절한 기자들’의 문을 두드립니다. 오늘은 3년째 반복되는 전력난과 ‘절전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올해 여름 전력난의 원인은 분명 예상치 못한 원전 3기의 정지 때문입니다. 허술한 원전 운영과 원전 산업의 고질적인 유착관계로 발생한 피해가 오롯이 국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절전이란 말을 들어야 하냐”는 주변 지인들의 원성이 벌써부터 자자합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따져봐도 국민이 전력난의 주범은 아닙니다.

매년 반복되는 전력난 문제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왜곡된 우리의 에너지 생산-소비 구조에서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2000년대 이후 전력 사용량이 꾸준히 늘었습니다. 에너지 소비 구조도 점차 많은 것을 전력에 의존하는 시스템으로 변해왔죠. 특히 일반 가정의 전력 사용량보다 산업용과 상업용의 전력 사용량 증가가 두드러집니다. 최근 발표된 산업부의 ‘6차 전력수급계획’을 보면 2002~2011년 10년 동안 상업용(6.4%)과 산업용(6.0%)의 소비 증가율이 주택용(4.6%)보다 높았던 것으로 나옵니다. 산업용 전력 사용량은 전체 사용량의 50%를 넘지만, 가정용 전력 사용량은 20%에 불과합니다.

이는 우리 경제규모가 성장하기도 했지만 전기요금이(특히 산업용 전기요금이) 비교적 싸게 유지됐기 때문입니다. 전기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료인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등의 가격은 급격히 올라갔는데, 여기서 생산된 전기요금은 그만큼 오르지 않았습니다. 석유난로가 조용히 자취를 감춘 것을 떠올려 보세요. 요금이 싼 전기가 있는데 굳이 비싼 연료를 쓸 필요가 없는 거죠. 게다가 수출 주도의 산업정책을 펴온 정부는 기업들한테 오랜 세월 동안 저렴한 요금으로 전기를 쓸 수 있는 ‘특혜’를 주기도 했습니다. 저렴한 산업용 전기요금이 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우고 영업이익을 늘리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됐다는 것은 쉽게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전력 공급능력은 늘어나는 수요를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2000년대 중반 중장기 전력 사용량 증가를 잘못 예측했다고 지적하며 발전소 건설을 계속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전력 사용이 계속 증가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무조건 발전소를 건설해 수요를 대는 공급 중심의 정책은 더 이상 현실적이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발전소는 건설하는 데 5~10년이 걸리고 2조원 안팎의 돈이 들어갑니다. 과거와 달리 건설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고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거스르는 문제도 불거지고 있습니다. 지난겨울과 이번 여름 모두 고장·비리 등의 이유로 무더기로 정지된 원전이 전력난을 부채질한 것을 보면 “경제적이다”는 이유만으로 원전을 대안으로 삼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현재의 전력난은 평일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 하루 2~3시간의 전력부족 현상을 뜻합니다. 24시간 전력이 부족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저녁 6시만 넘어가도 전력예비율은 정상상태로 돌아가고, 밤 10시가 되면 전력은 여유가 넘칩니다. 결국 하루 2~3시간을 위해 막대한 세금을 들이고 갈등을 겪으며 발전소를 무작정 많이 짓는 게 옳은 건지도 의문입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탓해야겠지만 당장 올해 여름에도 국민들은 ‘절전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전력 소비량이 몰리는 오후 2~5시에는 불편을 참아야 할 듯싶습니다. 최근 예비전력량은 전력을 짜내는 비상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의 전력량도 아쉬운 게 사실입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전력을 비롯한 에너지 소비량을 점차 줄이고, 신재생에너지의 확대, 전력 이용의 효율성 향상 등 ‘체질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물론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착한 국민’들은 불편을 감수하는데 정부와 에너지 부처, 전문가들이 제대로 된 ‘로드맵’을 가지고 전력 문제에 대처하는지 말이죠. 그리고 한가지 엉뚱한 제안도 해봅니다. 전력 소비가 몰리는 오후 2~5시에 ‘시에스타’(점심 식사 이후 낮잠을 즐기는 시간)를 도입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

이승준 경제부 산업팀 기자 gamja@hani.co.kr

[관련영상]'그들만의 리그'가 낳은 원전 비리 (한겨레캐스트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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