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6.21 20:10 수정 : 2013.06.22 14:08

석진환 정치부 정치팀 기자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정치부에서 청와대를 담당하는 석진환입니다. 통제도 많고 보안을 중시하는 권력기관을 취재하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무력감에 시달립니다. 날이 더워지면서 짜증도 늘었습니다. 그래도 좌절하지 말고 ‘친절하게 살자’고 다짐해봅니다.

며칠 전 ‘윤창중 전 대변인의 근황을 써달라’는 토요판 팀장 선배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달라진 게 없어 쓸 내용이 없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속으론 ‘또 윤창중 기사를 쓰라는 거야?’ 하는 약간의 짜증이 올라왔음을 고백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동행하며 꽤 많은 기사를 썼지만, 귀국 뒤 윤 전 대변인 때문에 ‘써야 했던’ 기사는 그 곱절이 넘었기 때문이죠. 그때의 허무함이란….

그 사건 이후 사석에서 ‘너도 윤창중이랑 술 먹었느냐?’ ‘윤이 원래 그런 스타일이었느냐?’ 등 한달 가까이 비슷한 질문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도 궁금하신가요? 윤 전 대변인은 순방 중 기자들과 술을 먹은 적이 한 차례도 없습니다. 접촉이 워낙 없어서, 기자들도 대변인을 거의 찾지 않았죠. 도피성 귀국을 한 지 만 하루가 지나도록 기자들이 몰랐던 것도 이런 사정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윤창중, 그 이후 어떻게 됐나’를 궁금해하지만, 그가 칩거에 들어간 40일 전 상황과 달라진 게 없습니다. 몇몇 청와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면, 돌아오는 대답이 한결같습니다. “미국 경찰에서 아직 연락이 온 게 없다.” 약간 불편한 표정에 한숨을 길게 내쉬는 반응마저 똑같습니다.

‘왜 아직도 연락이 없느냐’고 물으면 “미국은 사건 처리나 재판 등이 오래 걸린다더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일본의 옴진리교 교주 재판에 10년이 걸렸다는 사례를 말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귀가 쫑긋해지는 대답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솔직히 미국 경찰인들 사건을 빨리 처리하고 싶겠느냐. 외교적인 부분도 있는데 일부러 빨리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청와대로선 내심 여론의 관심이 멀어질 때까지 사건 처리가 늦춰지길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늦춰달라고 미국 경찰에 요청할 수도 없고, 그 정도로 윤 전 대변인을 보호하려는 분위기가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결국 미국 경찰이 윤 대변인을 소환하거나, 피해자가 직접 한국에 고소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셈입니다.

참, 19일부터 성범죄 처벌 조항이 크게 바뀐 건 아시죠? 성범죄와 관련해서는 친고죄(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와 반의사불벌죄(합의 등을 통해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죄) 조항이 사라졌습니다. 만약 윤 전 대변인 사건이 오늘 일어났다면 미국 경찰의 연락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텐데, 그의 ‘혐의’는 5월에 발생한 것이라 소급적용이 안 됩니다. 지난 4일 전국여성연대 등 1000명의 여성이 윤 전 대변인을 추행 혐의 등으로 우리 검찰에 고발했지만,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5월의 성추행’은 친고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검찰 역시 청와대처럼 “미국 수사를 지켜보겠다”는 것이지요.

미국 경찰의 ‘호출’이 늦어지는 사이, 윤 전 대변인의 칩거 환경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취재를 막으려 발코니 창에 붙어 있던 신문지는 ‘철거’됐습니다. 집 앞에서 진을 치던 취재진도 약 한달 전 불편을 호소하는 아파트 주민들 요청에 따라 ‘철수’했습니다. 최근엔 윤 전 대변인도 친한 지인들과 문자를 주고받는 횟수가 늘었다고 합니다. 제 문자에는 여전히 답이 없지만요.

누리꾼들 사이에선 ‘그가 집에서 치킨을 시켜 먹었다’, ‘그가 누리꾼을 모욕죄로 고소했다’ 등의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치킨을 시킨 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둘 다 사실이 아닌 걸로 확인됐습니다. ‘윤 전 대변인이 잘린 뒤 한달치 월급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돌았는데,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청와대는 5월10일 윤 전 대변인의 경질을 발표했고, 서류상 ‘직권면직’ 시점은 15일입니다. 5일치 급여를 더 받았네요.

참고로 청와대는 윤 전 대변인을 내보내면서 파면이나 해임 등의 ‘징계면직’이 아닌 ‘직권면직’을 택했습니다. ‘징계면직’은 퇴직금·연금에 불이익이 있고 공무원 임명도 일정 기간 제한되는 ‘엄벌’입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윤 전 대변인은 근무 기간이 1년이 되지 않아 퇴직금이나 연금이 없다. 앞으로 공무원에 임용될 가능성도 없다. 신속한 ‘정리’를 위해 직권면직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징계면직을 하려면 징계위 의결 등 절차가 복잡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석진환 정치부 정치팀 기자 soulfat@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리뷰&프리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