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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30 20:16 수정 : 2013.08.30 21:42

지난 정부의 실패를 벌써 잊었나. 지난 28일 청와대 대기업 회장단 오찬에 참여한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토요판] 리뷰&프리뷰 다음주의 질문

“대기업 중심의 경제 틀을 중소기업,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동반 발전하는 행복한 경제시스템으로 만들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의 근본 패러다임 전환을 약속했다. 경제민주화는 다름 아닌 새 경제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그동안의 양적 성장에서 질적 발전으로 전환하고, 성장의 온기가 온 국민에게 골고루 퍼지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민주화를 실현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교훈 삼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출범과 함께 친대기업 정책을 노골화했다. 규제완화, 감세, 저금리 등을 통해 재벌이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면 그 혜택이 서민이나 중소기업에도 돌아간다는 성장전략이다. 하지만 여당은 2009년 재보선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모두 패배했다. 대통령은 패배를 불러온 양극화 심화의 원인을 재벌들의 비협조 탓으로 돌렸지만, 사실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다. ‘낙수효과’가 실종돼, 재벌이 고성장을 해도 대다수 서민이나 중소기업으로 성과가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서 시대착오적인 엠비(MB)노믹스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통령은 2010년부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정책’으로 급선회했다. 재계에서는 정부가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죄회전한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정책은 소리만 요란했을 뿐, 가시적 성과를 거두는 데 실패했다.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고, 재벌에 의존한 한계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출범 6개월 만인 지난 8월28일 10대 그룹 회장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180도 돌변한 모습을 보였다.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고 본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 재벌의 투자와 고용 확대를 위한 노골적인 구애였다.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계의 반발에도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입법이 되면 심각하다”고 장단을 맞추었다. 지난 7월 경제민주화 입법이 마무리됐다는 발언에서 한발 더 나아가, 경제민주화의 목을 아예 비틀어버리고, 재벌 의존 경제체제를 고수하려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하루 뒤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새 정부는 중산층 70% 복원을 고용률 70% 달성과 함께 경제정책에 있어 최상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경제의 근본 체질개혁은 외면한 채 당장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만 급급해하며 재벌에 구걸하면서 이들 약속은 모두 공염불이 되게 됐다. 대통령은 경제살리기를 내세우지만, 이명박 정부의 실패가 보여주듯 경제민주화 없이는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 중산층 복원이 모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자신도 취임사에서 경제민주화 없이는 창조경제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하지 않았나?

대통령으로서는 6월 국회에서 대기업의 불법행위를 제재하기 위한 경제민주화 입법에서 성과를 거뒀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법안들이 실제 실행되는 시점은 대부분 내년부터다. 현재 분위기라면 법만 만들어놓고, 실행은 제대로 않는 최악의 상황도 예상된다. 또 경제민주화는 불공정행위의 근본 배경이 되는 대기업 지배구조의 혁신이 뒤따라야 가능하다.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박 대통령은 애초부터 소유지배구조 개혁에는 소극적이었다. 재벌 신규 순환출자 금지, 제2금융권 대주주 적격성 심사 확대 등 그나마 살아남은 입법 과제들은 모두 정기국회로 미뤄졌는데, 그 전망은 극히 어둡다.

박 대통령은 재벌에 투자와 고용을 구걸하면, 경제민주화를 포기하고 재벌 위주의 경제체제에 안주해도, 서민과 중소기업, 중산층을 살릴 수 있다고 정말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불과 6개월 만에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잊은 것이다.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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