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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30 20:18 수정 : 2013.08.30 21:33

허승 기자

[토요판] 리뷰&프리뷰 친절한 기자들

27일 오후 2시3분 프로야구 엘지(LG) 트윈스 구단의 공식 온라인 쇼핑몰 ‘트윈스샵’ 서버가 접속자 폭주로 다운됐습니다. 많은 야구팬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트위터와 각종 커뮤니티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묻는 글이 쏟아졌고, 심지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트윈스샵’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트윈스샵 누리집엔 “현재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서버 점검 작업중”이라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트윈스샵에 접속하지 못한 사람들은 서울 잠실야구장에 있는 오프라인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섰습니다.

야구팬은 재난영화의 첫 장면 같았던 이 사건을 ‘유광점퍼 대란’이라고 부릅니다. 안녕하세요? <한겨레>에서 야구를 담당하는 스포츠부 허승 기자입니다.

엘지 유광점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랍니다. 트윈스샵 접속도 쉽지 않고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판매 개시 두 시간 만에 준비했던 400벌을 모두 팔아치웠습니다. “유광점퍼가 이렇게 불티나게 팔린 건 오랜만 아니냐”는 질문에 엘지 구단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이에요, 처음.”

유광점퍼 대란은 엘지 팬에게는 기쁘면서도 씁쓸한 일입니다. 왜냐고요? 일단 기쁜 이유는 엘지의 ‘가을야구’가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3월말부터 10월초까지 진행되는 프로야구 정규리그에서 1~4위를 차지한 팀은 리그 일정이 끝난 뒤 포스트시즌에 참여합니다. 3위와 4위 팀은 5전3선승제의 준플레이오프를, 여기서 이긴 팀은 2위와 5전3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치릅니다. 다시 여기서 살아남은 팀은 정규리그 1위팀과 대망의 한국시리즈(7전4선승)에서 맞붙어 우승팀을 결정합니다. 포스트시즌은 10월초부터 11월초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가을야구’라고 부르는데요, 엘지가 마지막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때는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던 2002년이었으니, 벌써 11년 전의 일입니다.

‘춘추구단점퍼’란 공식 이름을 가진 유광점퍼는 엘지 야구팬 사이에서 가을야구의 상징으로 통합니다. 날씨가 쌀쌀해진 10월에는 역시 두툼한 유광점퍼가 제격이죠. 빤짝빤짝하는 광택성 소재에 엘지 고유의 팀 색깔인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구성돼 꽤 멋지기까지 합니다. 엘지는 103경기를 치른 30일 현재 60승43패, 승률 0.583으로 삼성(60승41패)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60승에 선착한 팀이 포스트시즌에 탈락한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128경기가 다 끝난 뒤 엘지가 4위 밑으로 떨어지는 것보다는 삼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게 더 쉬워 보일 정도입니다.

지난 11년 동안 포스트시즌 문턱에도 가지 못한 엘지였으니, 올 시즌 엘지 팬의 기대감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유광점퍼 가격 9만8000원이 아깝지 않겠죠. 사실 유명 중고 카페에서는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중고 유광점퍼가 신품 가격의 2배인 최대 20만원에까지 거래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유광점퍼 대란은 트윈스의 잔혹했던 과거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씁쓸한 사건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열성적이라는 엘지 팬들이 유광점퍼를 사려고 줄을 선다는 것은, 그만큼 유광점퍼가 없는 팬들이 많다는 겁니다. 엘지 관계자는 “유광점퍼는 매년 많아야 300벌 정도 팔렸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날씨가 쌀쌀해지기 전에 시즌을 접어야 했으니 입을 일이 별로 없었던 거죠. 강산이 변하는 동안 유광점퍼보다는 ‘꼴쥐’, ‘칠쥐’,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뜻의 야구계 용어 ‘디티디’(DTD·Down team down) 등 온갖 조롱을 참고 견디는 게 더 익숙한 엘지 팬들이었습니다.

‘유광점퍼’란 네 음절은 오랫동안 엘지 팬들의 속을 후벼 판 얄미운 단어입니다. 2011년 당시 팀의 주장이던 박용택은 시즌 초반 팀이 선두를 다투자 팬들에게 “올해는 하늘이 두 쪽 나도 가을야구를 할 것이다. 얼른 유광점퍼를 구입하시라”고 말했다가 팀 성적이 다시 곤두박질치자 팬들로부터 뭇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올 시즌 전에 김기태 엘지 감독이 “올해는 유광점퍼를 구입하셔도 좋다”고 공언했을 때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야구팬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웃음은 의구심이 되고 반신반의가 되더니 유광점퍼 대란이 됐습니다. 엘지 구단은 유광점퍼를 추가로 제작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29일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예약을 받고 있고 9월11일부터 예약분 발송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번 유광점퍼 소동은 또다른 소동의 예고편일 뿐입니다. 한 엘지 팬은 어느 야구 커뮤니티 게시판에 “유광점퍼 사고 싶은데 포스트시즌 예매 못하면 어차피 못 입는 거 아닌가요? 정규시즌도 요즘 예매 안 되는데 포스트시즌은 과연 예매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허승 스포츠부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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