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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27 19:51 수정 : 2013.12.27 19:58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이 철도파업 19일째인 27일 오전 서울 민주노총에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한 뒤 회견장을 나가고 있다. 2013.12.27 연합뉴스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오늘은 안녕하시냐고 묻지 않겠습니다. 전 안녕하지 못한 여러분의 마음까지 알고 있는 세심하고 친절한 <한겨레> 사회부 24시팀 정환봉 기자예요.

많은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한 시대죠. 그중에서도 고속철도 민영화 반대를 외치며 파업을 벌이고 있는 김명환(48) 전국철도노조 위원장의 안녕이 가장 걱정돼요. 경찰이 1계급 특진까지 걸고 체포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까요.

지난 22일 경찰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본부가 있는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에 강제 진입했어요. 김 위원장을 비롯한 철도노조 집행부 체포가 목적이었습니다. 5500여명의 경찰이 언론사 건물을 초토화시키며 10시간 넘도록 수색을 벌였죠. 건물 안에는 김 위원장이 없었어요. 알고 보니 경찰도 수색영장이 없었어요. 국민들은 어이가 없었고요.

관심은 사라진 김 위원장 행방에 집중됐어요.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어요. 당시 늦게까지 민주노총 본부를 지켰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김 위원장은 22일 새벽까지 분명히 민주노총 본부에 있었다고 합니다. 새벽에 어떻게 나갔는지는 의견이 갈려요. 김 위원장이 확실히 건물 밖으로 나갔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일부러 폐회로텔레비전(CCTV) 카메라가 있는 곳을 통해서만 밖으로 나갔다는 소문도 있어요. 문으로 걸어 나갔다,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옆 건물로 건너갔다 등등 각종 추측도 나옵니다. 경향신문사 건물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해요. 출입문이 5개나 되거든요. 건물 안도 길을 잃기 쉬울 정도로 미로처럼 되었고요.

가장 음모론적인 추측은 김 위원장이 처음부터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설이에요. 실제로 경찰은 김 위원장이 ‘철통 경계’를 뚫고 건물 밖으로 나갈 가능성이 적다고 봐요. 언론사라 제대로 수색을 하지 못한 1~8층의 경향신문사에 숨어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어요.

그 속내는 뻔해요. ‘작전 실패’의 책임을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죠. 경찰이 대규모 공권력을 동원하고도 체포영장을 집행하지 못한 경우는 이번뿐이 아니에요. 2009년 9월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을 비롯해 용산참사 수배자 3명이 서울 순천향대 병원에서 빠져나와 명동성당으로 거처를 옮긴 적이 있어요. 경찰은 당시 병원 밖에서 사복 경찰을 동원하고 오가는 차량을 일일이 검색하면서 체포에 열을 올렸지만 결국 실패했었죠.

26일에는 경찰의 체면을 더 구기는 일이 벌어졌어요. 행방이 묘연했던 김 위원장이 다시 민주노총 본부로 돌아온 거예요.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 본부로 돌아온 다음날인 27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수서발 고속철도 면허 발급을 중단하면 파업을 마치겠다”고 밝혔어요. 철도 민영화의 전 단계로 여겨지는 자회사 설립을 그만두기 전까지는 파업을 멈출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거죠.

한 차례 작전에 실패한 경찰은 민주노총 본부 안에 김 위원장이 있는 것을 뻔히 알지만 또다시 체포 작전에 들어가는 것은 망설여요. 이미 경찰은 22일 많은 무리수를 뒀잖아요. 올해 한달 평균 사용량의 최루액을 하루 만에 다 뿌리며 수색영장도 없이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민주노총 본부에 강제로 진입한 거예요.

김 위원장의 민주노총 본부 탈출기가 저도 궁금하긴 해요. 그보다 더 궁금한 건 왜 경찰이 무리수를 둬가며 김 위원장을 체포하려고 했냐는 거예요. 정부는 철도 파업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던 걸로 보여요. ‘귀족 노조’, ‘철밥통’ 같은 말이 더는 먹히지 않는데다 이번 파업을 지지하는 여론도 적지 않았으니까요. 실제로 철도노조 관계자들은 “이렇게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지 몰랐다”고 말해요. 게다가 전국 곳곳에 붙여지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처음 등장한 계기도 파업 이후 철도공사가 수천명의 철도 노동자를 직위해제한 것 때문이었어요.

정환봉 기자
보통 사람은 누가 계속 말을 하면 한번 들어봐요. 그리고 혹시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은 없는지 살펴요. 높으신 분들은 주먹이 먼저 나가나 봐요. 시끄러우니 한 대 세게 때리면 조용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아요.

문제는 정부가 하필 벌집을 때렸다는 거예요. 가뜩이나 안녕하지 못해 속상한 시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른 거죠. 많은 시민들이 너도나도 오늘(28일) 민주노총 총파업에 참가하겠다고 나서고 있어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개성 넘치는 총파업 포스터 수백장이 도네요. 다시 또 궁금한 게 생겼어요. 오늘 오후 3시 안녕하지 못한 모든 이들이 서울광장에서 모인다면, 박근혜 대통령과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까요?

정환봉 사회부 24시팀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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