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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14 19:37 수정 : 2014.02.14 20:52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원래 있던 곳에서 전화가 와요. 기자님 이렇게 기사가 나가면 어떻게 하나요.”

“제 경우가 기사에 나오니 국정감사 때 지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어요. 회사에서 좋아하지 않아요. 기사 쓰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대기업으로 흐르는 나랏돈’ 기획 가운데 ‘재벌과 관료의 밀월’ 편이 보도된 아침, 삼성으로 간 전 공무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기사 때문에 원래 있었던 기관이나 삼성을 대하기 껄끄러워졌다고 토로했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들으며 국감도 국감이지만, 옛 기관에 있던 현직 후배들이 기사 때문에 대기업으로 못 갈까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혹시 제가 너무 공무원을 못 믿는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한겨레> 경제부에서 일하는 이완이라고 합니다. 친절한 기자에는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네요. 재미있는 자동차 기사, 읽기 쉬운 중공업 기사로 독자를 많이 만나고자 했는데 이번 ‘대기업으로 흐르는 나랏돈’ 기획을 통해 훨씬 많은 독자들의 반응을 만났습니다. 한국의 재벌 문제는 식지 않는 ‘뜨거운 감자’인가 봅니다.

공무원에 대한 제 믿음이 왜 약해졌는지는 참여연대가 2001년부터 2013년까지 모은 공무원 재취업 자료를 분석하면 나옵니다. 취업 승인을 받은 퇴직 고위 공직자 1866명을 추적해보니, 전체의 42%인 778명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재벌·2013년 기준) 소속 기업에 재취업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삼성으로 182명, 에스케이(SK)로 53명, 현대자동차로 45명, 엘지(LG)로 32명이 갔습니다. 생각보다 적다고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 승인을 받고, 바로 기업으로 간 경우만 이렇습니다. 취업심사 승인을 받지 않거나(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퇴직 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간 사람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그러면 비슷한 반응이 나옵니다. ‘다른 부처 출신 공무원이 좋은 데를 더 많이 가는데 왜 나를 가지고 그러냐.’ 한 전직 고위 경찰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모피아(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 금융 관료) 등 금융 부처 출신이나 산업부, 국토부, 가장 힘있는 감사원이나 공정위, 국세청 그런 데 있다 나와야 정말 제2의 직업을 갖지. 우리 경찰은 불쌍해, 정말 갈 데가 없다. 고급 인력이 썩고 있다.” 이분은 삼성 계열사에 갔다가 정부 산하 기관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재벌 대기업으로 많은 퇴직 공직자를 보낸 곳은 경찰(84명)입니다. 국방부(152명) 다음이지요. 대검찰청(65명), 국세청(47명), 금융감독원(39명), 국가정보원(33명) 출신들도 대기업으로 많이 갔더군요. 아마 이런 기관 외에서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은 전직 경찰의 말에 문제가 있다고 얘기할 겁니다.

물론 자신이 가진 지식과 경험으로 일하는데 뭐가 문제냐며 억울하다는 전직 공무원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기업 관계자는 말합니다. “기업이 정보를 뽑으려고 데려가는 거지. 또 정부 기관에 네트워크가 있을 테니 우리에게 소개만 해줘도 좋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이 퇴직 공무원에게 그냥 높은 연봉과 사무실과 승용차를 주고 모셔올까요. 그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퇴직 뒤 삼성으로 간 또다른 공무원은 현직에 있는 후배들과 “업무와 관련해 통화도 하고 필요하면 만나서 (기업) 얘기를 전한다”고 했습니다. 행정고시를 통해 기수가 정해지는 공직사회에서 선배의 말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정보도 중요합니다.

이번 기획을 통해 <한겨레>가 대기업으로 흘러간 나랏돈을 조사해보니 지난해에만 21조3819억원에 이르렀습니다. 연구개발 직접 보조금 1조4397억원, 비과세감면으로 깎아준 돈이 7조1063억원(2012년 신고 기준)이었습니다. 공공조달로 대기업이 수주한 금액도 12조8359억원이었습니다. 모아놓고 보니 엄청난 금액이죠. 기업 입장에서는 이 돈을 따내는 데, 모셔온 퇴직 공무원이 일부만 힘을 써줘도 분명 남는 장사일 겁니다.

이렇게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대기업으로 흐르는 나랏돈’ 취재가 끝났습니다. 아, 함께한 경제부 선배 류이근 기자가 자료를 만들기 시작한 때를 따지면 지난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가야겠군요. 자료 얻기는 힘들었습니다. 대기업으로 가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분야별로는 조금씩 나와 있었지만, 종합적으로 자료를 모아놓은 곳은 없었거든요. 이렇게 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니, 내년에도 함께 관찰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이완 경제부 산업팀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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