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04 19:52
수정 : 2014.04.05 14:23
[토요판] 리뷰&프리뷰 친절한 기자들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 어떻게 생각하냐?” “잘 모르겠는데…. 근데 그거 왜 그렇게 시끄러운 거야?” 연령대가 높은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반응이 많았습니다. 국회의원들마저 “국민들의 관심은 많이 없는 것 같다”고 털어놓곤 합니다. 하지만 여의도와 언론은 여전히 6·4 지방선거의 기초선거 공천제 폐지를 둘러싼 논란으로 뜨겁기만 합니다.
안녕하세요. <한겨레> 정치부에서 정당을 맡고 있는 이승준입니다. 그동안 공천제 폐지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친절하게’ 전해드리지 못한 점을 반성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기초공천제 폐지가 여의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해 10월8일, 안철수 대선 후보(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한 대학 강연에서 정치개혁의 방안으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 의원들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당시 대선 후보를 두고 경쟁을 벌이던 문재인 새정치연합 의원(당시 민주통합당)이 바로 기초공천제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약속했고, 당시 야당 후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공약에 담았습니다.
대선 후보들이 앞다투어 공약으로 내세우다 보니 기초공천제 폐지가 정치개혁의 대명사로 떠올랐습니다. 대선 뒤 새누리당은 기초공천제 폐지 공약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보였고, 옛 민주당은 지난해 7월 전체 당원 투표로 기초공천제 폐지를 확정했습니다.
기초공천제의 폐지 여부를 두고 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폐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쪽은 정당 공천 과정에서 돈이 오가는 ‘매관매직’이 생기는 원인이 정당공천제에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그동안 일부 정치인들은 몇억원의 돈을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중앙당에 주고 ‘후보 자리’를 사는 일을 반복해 왔습니다. 또 이러한 구조가 굳어지면서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된다는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됐습니다.
기초공천제 폐지를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은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주체이고, 선거는 유권자들이 그 정당을 평가하는 기회입니다. 또 기초공천제 폐지가 정당체제를 약화시키는 ‘반정치적’인 제도라고 보는 정치학자도 많습니다. 진보정당들은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들의 정치 진입을 막는다는 이유로 공천제 폐지를 반대하고 있기도 합니다. 결국 건설업자 등의 지역 유지와 유력 인사들이 지역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양쪽의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문제는 새누리당이 기초공천제 폐지 약속을 파기하며 이번 지방선거가 두 개의 규칙이 존재하는 기이한 선거로 치러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두 개의 규칙은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 투표용지는 모두 7장(광역단체장, 광역의회 의원, 광역의회 비례대표, 기초단체장, 기초의회 의원, 기초의회 비례대표, 교육감)입니다. 기초단체장, 기초의원의 투표용지에서 공천을 유지하는 새누리당은 기호 1번을 유지하지만, 기존의 기호 2번은 빈자리로 남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무공천을 선언한 새정치연합 후보들은 무소속으로 출마하기 때문에 기호 5번 뒤로 밀리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새정치연합의 경우 여러명이 출마를 선언해 유권자들도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정당과 후보자도 모르고 찍는 ‘묻지마 투표’ 가능성도 커진 셈이죠.
이러다 보니 무공천을 선언한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도 “기초선거 전패가 우려된다”며 기존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게 나옵니다. 현재 새정치연합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해 기초공천제 폐지를 압박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공천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꿈쩍도 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현재의 혼란은 대선 공약을 쉽게 뒤집어버린 박 대통령과 여당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단점이 존재하는 정당공천제를 충분한 논의 없이 정치개혁 1순위 과제로 밀어올린 야당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동네 일꾼들을 뽑는 일입니다. 좋은 시장과 구청장, 기초의원들은 전시성 토목사업 대신 아이들의 먹거리를 챙기고, 도서관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정당공천제 폐지 논란이 정쟁에 그치지 말고, ‘나쁜 정치인’들을 걸러내고 ‘좋은 정치인’들을 뽑아야 하는 지방선거의 의미를 살리는 데 밑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이승준 정치부 정치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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