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09 20:15
수정 : 2014.05.09 21:52
친절한 기자들
2주 전부터 전자 분야를 새로 맡게 된 유신재입니다. 온갖 기술용어가 난무하는 전자업계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 문과 출신이 뭔가 친절하게 설명한다는 게 가당치 않습니다만, 다행히 문과의 영역인 소송 이슈가 있어 조심스레 도전해봅니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벌이는 ‘스마트폰 특허전쟁’ 이야기입니다.
이달 초 미국 캘리포니아북부 연방지방법원 새너제이지원에서 삼성과 애플의 ‘2차 특허소송’ 배심원단의 평결이 나왔습니다. 애플이 제기한 5개의 상용특허 중 3개를 삼성이 침해했으니까 삼성이 애플에 1억1962만5000달러를 물어야 하고, 삼성이 제기한 2개의 상용특허 중 1개를 애플이 침해했으니까 애플이 삼성에 15만8400달러를 물어야 한다는 게 배심원단의 결론입니다. 애플이 받아야 할 돈이 삼성이 받아야 할 돈보다 755배나 큽니다. 그런데도 삼성의 판정승이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이런 반응을 이해하려면 3년 넘게 진행중인 삼성과 애플의 소송사를 살펴봐야 합니다.
애플은 2011년 4월 삼성이 자기네 디자인 특허 4건과 상용특허 3건을 베꼈다고 소송을 걸었습니다.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논쟁으로 유명한 소송입니다. 이에 삼성은 애플도 자기네 표준특허 2건과 상용특허 3건을 베꼈다고 받아쳤습니다. 이게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폰 특허전쟁의 시작입니다. 편의상 ‘1차 특허소송’이라고 부릅시다. 3년에 걸쳐 진행된 재판 끝에 삼성이 애플의 특허 6건을 침해했고, 애플은 삼성의 특허를 하나도 침해하지 않았다는, 그래서 삼성이 애플에 9억3000만달러를 물어야 한다는 1심 판결이 지난 3월6일 나왔습니다. 삼성의 ‘완패’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1차 소송을 제기하고 10개월 만인 2012년 2월 애플은 삼성을 상대로 추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역시 삼성은 반소로 대응했습니다. 이게 ‘2차 소송’입니다. 애초 애플은 2차 소송을 제기하면서 삼성이 22억달러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삼성은 애플이 620만달러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애플의 청구액이 삼성의 청구액보다 355배나 큽니다. 삼성이 이처럼 적은 돈을 청구한 이유는 뭘까요? 처음부터 한 수 접고 들어간 것일까요? 삼성은 일부러 적은 돈을 청구함으로써 ‘특허는 돈벌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고로 애플이 청구한 22억달러는 터무니없는 금액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봐야 합니다. 삼성의 이런 의도가 먹힌 것일까요. 배심원단은 애플이 청구한 22억달러의 6%에 불과한 1억1962만5000달러만 인정했습니다. 또 애플 역시 삼성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판단도 이끌어냈습니다. 그동안 애플은 줄기차게 삼성을 ‘카피캣’(모방자)이라고 공격해왔는데, 피장파장이 된 셈입니다. 삼성은 또 이 특허전쟁이 ‘애플 대 삼성’의 싸움이 아니라 사실은 ‘애플 대 구글’의 싸움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입니다. 애플이 문제삼는 기능들은 구글이 만든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가 구현하는 것이죠. 평결 직후 배심원단 대표를 맡은 토머스 더넘은 “만약 구글이 이번 사건의 배후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변죽을 울리지 말고 좀더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생각해볼 만하다”는 말을 남겼죠. 자신있으면 구글과 ‘맞짱’을 뜨라는 말로 들립니다.
1차 소송을 시작으로 두 회사는 한국, 일본, 유럽 등 모두 9개국에서 소송을 진행중입니다. 애플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삼성은 아직 특허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습니다. 1심이 끝난 소송들에 대해 양쪽 모두 항소했기 때문이죠. 삼성 제품의 판매를 막지도 못했습니다. 삼성에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도 맥없이 내줬습니다. 확실한 건 변호사 비용으로 막대한 돈을 쓰고 있다는 겁니다. 2차 소송 배심원 평결 직후 미국의 한 로스쿨 교수는 “(손해배상금액이) 변호사 비용과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더군요.
특허는 근본적으로 혁신을 장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사람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함으로써 혁신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고, 새로운 기술을 공개함으로써 더 높은 혁신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자는 것이 특허 제도의 취지입니다.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은 혁신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요? 배심원단 대표 더넘은 “소송을 벌일 경우 엔지니어들이 변호사들과 답변서를 준비하는 일 등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게 된다. 결국 이는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답니다.
유신재 경제부 산업팀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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