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 거점을 둔 수니파 무장세력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대원들이 지난 6월8일 이라크 중부의 티크리트시에서 트럭 뒤편에 올라 시아파 정부군을 향해 포를 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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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횡설수설했다. “내가 이라크와 사담 그리고 알카에다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계속 주장한 이유는 이라크와 알카에다 사이에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9·11위원회가 2004년 6월 보고서를 냈다. 알카에다와 후세인 정권 사이에는 공모관계가 없다고 확인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개전 이유에 대한 부정이다. 기자들의 질문에, 부시는 비논리적 대답을 했다. 어쩌면, 부시의 어법이 터무니없는 이 전쟁의 성격을 가장 잘 규정했다. 대가는 잔인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11년3개월, 미군이 철수한 지 2년6개월이 된 지금 이라크는 다시 전쟁이 불붙고 있다. 알카에다보다도 극렬하고 잔인한 이슬람주의 세력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바그다드까지 진군하고 있다. <포린 폴리시>는 이를 3차 이라크 전쟁이라고 지적한다.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을 축출하려는 걸프전,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이은 새로운 전쟁이다. 9·11 테러가 나자, 부시 정권은 후세인 정권의 알카에다 연관과 대량살상무기 개발 위협을 들었다.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다. 증거는 없는데도 미국은 모른 척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시작으로 친미 정권을 수립해 중동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중동개조론에 집착했다. 또 첨단 정밀무기 개발과 병력의 기동화를 추구하는 군개조론을 이라크 전쟁에서 시험했다. 미국은 ‘더 적은 병력으로, 더 빠르게 배치해, 더 치명적인 승리’에만 집중했다. 후세인 정권 타도 이후 국가재건에는 모르쇠였다. 그들이 추구하던 중동개조론의 시작인 이라크에서의 민주정권 수립과도 배치됐다. 미국은 후세인 정권 타도 뒤 이라크군 해체 등으로 실업자와 반체제 세력을 키웠다. 후세인 체제 세력들은 근절된 것이 아니었다. 미군이 침공하자 무기를 가지고 집으로 갔을 뿐이었다. 이들은 곧 무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주류 지위에서 밀려난 이슬람 수니파가, 그다음은 과격 이슬람 시아파가, 그리고 곧 이슬람주의 세력이 일어났다. 그리고 알카에다 등 국제 이슬람주의 세력도 이라크로 왔다. 2007년 1월10일 부시는 “어디에서 실수가 있었던 간에,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이라크전 실패를 자인했다. 2만명의 병력 증강을 발표했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사령관이 주도한 이라크 안정화 전략 등으로 이라크 내전은 한때 소강상태를 보였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 말 미군을 철군하며 이라크전 종전을 선언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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