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도쿄 특파원 길윤형입니다. 이번주엔 ‘집단적 자위권’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까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일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하는 헌법 해석 변경안을 각의 결정했습니다. 많은 언론들은 이 조처를 일본이 전후 69년 동안 유지해온 전수방위 원칙(공격은 하지 않고 오로지 방어만 한다는 원칙)을 포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동안 일본을 지키기만 해왔던 자위대가 필요에 따라 해외 무력분쟁에 개입할 수 있도록 안보정책상의 거대한 방향전환을 한 것입니다. 집단적 자위권의 사전적 의미는 ‘자국이 공격을 받지 않아도 자국과 밀접한 나라가 공격을 받을 경우 이를 실력으로 저지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일본의 입장에서 이 말의 의미를 좀더 음미해 볼까요. 일본은 1945년 8월 미국 등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을 합니다. 이후 미국의 주도로 새 헌법을 만듭니다. 1946년 11월 탄생한 새 헌법은 9조에서 “일본이 전쟁을 무력분쟁의 해결 수단으로 삼는 것을 포기한다”고 선언하며 ‘군대의 보유’와 ‘교전권’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게 간단하던가요. 1950년 6월 이웃한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자 미국과 일본은 불안해집니다. 미국은 헌법 9조의 제약에도 1950년 8월 일본에 자위대의 전신인 경찰예비대를 만들게 합니다. 이 조직이 1952년 10월 보안대를 거쳐 1954년 7월 지금의 자위대로 확장하는 것이지요. 일본이 자위대를 갖는 게 헌법 위반이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나오자 일본 정부는 “자국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취하는 것은 주권국의 당연한 권리”라고 설명합니다. 시간이 흘러 미국이 1964년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목 아래 베트남 내전에 참전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전쟁에 한국도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해 무려 32만명의 병력을 파견하지요. 이런 국제 정세를 살펴보며 불안해진 일본 사회당의 미나쿠치 고조 의원은 1972년 10월 당시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에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일본의 자위의 조처는 필요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자국이 공격을 받지 않았는데도 무력을 행사하는 집단적 자위권은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힙니다. 이것이 일본 정부가 42년 동안 지켜온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 해석입니다. 아베 정권은 지난 1일 종래의 헌법 해석을 교묘하게 비틀어, 최근 국제정세가 급변하기 때문에 “필요 최소한의 집단적 자위권은 헌법상 허용된다”고 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일본 정부가 제시한 ‘최근 국제정세의 급변’이라는 성명에서 드러나듯 중국의 부상이 두려워서지요. 전후 70년 가까운 시간이 되는 동안 일본은 한-중과의 ‘역사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전에 나쁜 짓을 한 경험이 있으니 중국이 앞으로 강해져 가는 것을 한국처럼 ‘동반자’의 입장에서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등 일본의 우익들은 일본이 미국을 도와 중국에 대항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아베 총리가 1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억지력’이란 바로 이를 뜻합니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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