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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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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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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가장 강력한 공권력인 수사를 통해 선거를 앞둔 특정 정치인을 공격하는 것은 범죄에 가까운 수사권 남용이며 선거개입 행위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혐의에 대한 경찰 수사가 선거법 위반 및 직권남용 행위에 해당한다며 검찰이 내세우고 있는 논리다. 그렇다면 똑같은 논리로 이런 명제가 가능하다. “검찰이 총선을 5개월 앞두고 가장 강력한 공권력인 수사를 통해 청와대와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들에 대해 수사를 하는 것은 범죄에 가까운 수사권 남용이며 총선에서 여권을 불리하게 만들기 위한 명백한 선거개입 행위다.” 실제로 청와대를 겨냥한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앞으로 총선에서 여권 전체에 악재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이런 말에 검찰은 아마 펄쩍 뛸 것이다. 지금 진행하는 수사는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으며, 총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검찰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자가당착이고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민감한 시기에 정치적 파장이 있는 사안에 대해 수사를 하는 데 어찌 정치적 셈법이 없을 수 있겠는가. 울산시장 비서실장 비리 수사의 경우도 경찰 입장에서 보면 ‘도랑 치고(토착비리 척결) 가재 잡는(선거에 영향)’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검찰 수사를 보면 ‘도랑’을 치기보다는 ‘가재’를 잡는 데 더 역점이 있어 보인다. 울산시장 측근들에 대한 경찰 수사의 정치적 의도가 2~3할쯤 된다면 검찰 수사의 정치적 의도는 7~8할은 돼 보인다. 그런데도 선거를 앞둔 경찰 수사는 직권남용에 선거개입이지만, 검찰이 하면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며 선거개입이 아니라는 말을 검찰은 어떻게 그리 당당하게 할 수 있는가? ‘검로경불’, 검찰이 하면 로맨스고 경찰이 하면 불륜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했다. 이런 태도야말로 한국 검찰의 자기중심적 사고와 오만함이 어떤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게다가 경찰의 불륜이 조그만 불장난 정도라면 검찰의 불륜은 나라 전체를 태울 수 있는 위험한 불장난이라는 데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검찰이 총선 결과에 관심이 없다는 식의 발뺌을 한다면 그것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다. 검찰이 정치 풍향에 얼마나 민감한 조직인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게다가 내년 4월 총선 결과는 검찰의 앞날에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예를 들어 총선 다음날 아침 신문들에 일제히 이런 기사 제목이 실렸다고 상상해보자. ‘여당 총선 압승…공수처법 등 단독 통과 가능해져…검찰 개혁 탄력받을 듯’. 검찰의 현재 아군은 공수처 설치 등을 반대하며 단식농성까지 벌인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이다. 공수처법안이 국회 신속처리안건에 올라있긴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극력 반대하면서 20대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불투명한 상태다. 그런데 다음 총선에서 검찰의 아군인 자유한국당이 참패를 당하고 여당이 검찰 개혁 법안을 단독 통과시킬 수 있을 만큼 압승을 거둔다면? 검찰로서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이 총선에 개입해야 할 ‘동기’가 명백한 셈이다.
검찰의 수사 진행 과정을 들여다봐도 정치적 의도가 물씬 풍긴다. 검찰은 자유한국당이 이미 지난해 3월에 고발한 사건을 1년8개월 동안이나 묵혀오다가 갑자기 수사 주체를 울산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옮기고 청와대를 향한 전방위적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수사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고, 수사를 빨리 끝내고 싶으면 초스피드로 진행하고 아니면 한없이 질질 끌고, 검찰 쪽 사람이 관련된 비리 사건은 봐주기 수사로 일관하지만 평소 밉게 보인 사람에 대해서는 없는 죄도 뒤집어씌우려는 태도, 이런 검찰의 고질적 병폐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이번 사건이다. 바꿔 말하면 앞의 1년8개월은 검찰의 명백한 직무유기요, 뒤의 행위는 자의적 검찰권 행사의 전형적인 예다.
검찰은 사건을 묵힌 이유에 대해 “지난 3~4월 경찰에서 진행한 김기현 전 시장에 대한 수사가 검찰에서 최종적으로 무혐의로 종결된 뒤 수사를 시작했다”며 그 뒤로도 경찰의 비협조로 수사가 늦어졌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변명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사안의 성격상 경찰의 선거개입 혐의 수사를 김 시장 측근들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릴 때까지 굳이 기다려야 할 이유도 없다. 자유한국당에 고발당한 황운하 대전청장이 그동안 울산지검에 빨리 수사를 매듭지어달라고 요청해온 점에 비춰보면 경찰의 비협조로 수사가 늦어졌다는 설명에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검찰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출입기자들에게 보냈다는 해명문 중에는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 하나 있다. 바로 ‘김기현 시장 수사’라고 표기한 점이다. 경찰은 김 시장의 동생과 비서실장에 대해서만 수사했을 뿐 김기현 시장 본인에 대해서는 수사한 적이 없다. 동생의 경우 한 건설업자가 고발해서 수사에 착수했고, 이른바 청와대 하명수사와 관련이 있는 사건은 비서실장 비리 혐의 수사 한 건이다. 더욱이 경찰은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 동생과 함께 고발된 김 시장에 대해서는 피고발인이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전환하고 소환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검찰은 마땅히 ‘김기현 시장 동생·비서실장 수사’라든가 ‘김기현 시장 측근 수사’라고 써야 옳은데도 시종일관 ‘김기현 시장 수사’라고 표기했다. 그것이 단순한 실수일까? 평소 스스로 정확하고 엄밀하다고 자부하는 검찰이 그럴 리는 없다. 이런 표현법에는 사건의 의미를 왜곡하고 부풀리려는 고의적 의도가 숨어 있다. 검찰은 “따지고 보면 김기현 시장 측근 수사는 바로 김기현 시장 수사나 마찬가지 아닌가”라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반문하고 싶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 문재인 대통령 측근에 대한 수사는 ‘문재인 대통령 수사’인가? 사실 검찰은 내심 그렇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검찰이 김기현 전 시장 동생과 비서실장 비리혐의에 대해 이례적으로 99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불기소 처분 결정문을 남겼다는 대목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 검찰이 부정부패 혐의에 대해 그토록 신중하고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해 노심초사했는가. 수사 실적 올리기에 급급해 기소를 남발했다가 재판에서 무더기로 무죄 판결이 나도 나 몰라라 하는 검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눈물을 흘리는가. 따라서 검찰이 ‘이례적’으로 장문의 불기소 처분 결정문을 남긴 데는 ‘이례적인 동기’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바로 경찰의 선거개입 혐의 수사를 위한 명분 쌓기용 성격이 짙다.
이 사건은 애초 울산 지역에서 벌어진 이른바 ‘고래고기 환부 사건’ 등을 둘러싼 검-경 갈등을 빼놓고는 그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다. 고래고기 환부 사건은 2016년 초 경찰이 시가 40억원에 이르는 불법 고래 포획·유통업자를 일망타진하면서 압수한 밍크고래 27톤가량을 울산지검 황아무개 검사가 일방적으로 고래고기 유통업자들에게 돌려준 사건이다. 환경단체가 2017년 9월 황 검사를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으로 경찰에 고발하자 울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황 검사를 피고발인 신분으로 수사하려 했다. 경찰이 ‘감히 분수도 모르고’ 검사를 수사하려 나선 것이다. 게다가 당시 울산경찰청장은 평소 ‘검찰 저격수’로 이름난 황운하 청장이었다. 검찰이 경찰과 황 청장에 대해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이후 검찰은 사사건건 경찰이 하는 일에 딴죽을 걸었다는 것이 현지 취재기자들의 전언이다. 김기현 시장 측근 비리혐의 경우도 현지에 워낙 소문이 무성해 검찰 스스로 내사를 할 정도였는데도 막상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검찰은 압수수색 청구 등에서 제대로 협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검찰은 평소 눈엣가시 같은 황 청장을 어떻게든 손봐주려고 불기소 처분 결정문부터 장문으로 써놓았고, 그 뒤 사건을 종결짓지 않고 질질 끌다가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향한 공격의 흐름 속에서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금 ‘청와대와 경찰의 선거개입’이라는 프레임을 짜 놓고 그 프레임에 모든 것을 짜 맞추어 몰아가는 양상이다. 그리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은 검찰에 맞장구를 치며 여론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검찰의 무리수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경찰이 청와대에 울산 수사 상황을 몇 차례 보고한 것이 범죄행각을 뒷받침하는 대단한 증거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떠는 대목도 그렇다. 김 시장 측근 비리 수사는 이미 경찰이 수사에 착수할 때부터 정치쟁점화돼 있었다. 자유한국당이 매일 각종 집회를 여는 등 정치적으로 매우 시끄러웠다. 그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손을 놓고 상황 파악을 안 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런데도 검찰과 보수언론은 모든 것을 청와대와 경찰의 은밀한 범죄행위로 일방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울산시장 측근 비리혐의 수사 진행 과정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있다. 황운하 청장이 수사가 개시된 뒤 얼마 안 돼 경찰청의 권유로 ‘수사지휘 취소 결정’을 하고 수사에서 빠졌다는 점이다. 경찰청 훈령에는 수사하는 경찰관 본인이 “내가 수사하면 공정성을 의심받으니 수사에서 빠지겠다”고 하면 경찰청의 승인을 받아 수사 라인에서 빠지는 제도가 있다. 자유한국당은 경찰의 김기현 시장 비서실장 사무실 압수수색이 있자마자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경찰을 공격했고, 특히 황 청장 개인을 타깃으로 삼아 집중 공격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난처해진 경찰청이 황 청장에게 ‘수사지휘 취소 결정’ 아이디어를 냈고 황 청장은 이를 따른 것이다. 황 청장은 “그 뒤로 나는 그 사건 수사에 대해 전혀 보고도 받지 않고 지시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그 말의 진실 여부는 확인해보면 금방 드러날 것이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황 청장이 수사 라인에서 빠졌다면 검찰이 몰아가는 청와대와 경찰의 은밀한 범죄행위라는 프레임의 한 축이 무너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말하는 대로 울산시장 비서실장 비리혐의에 대한 수사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관심을 집중한 사활적 사안이었다면 당연히 ‘청와대-울산경찰청장의 핫라인’이 가동돼야 옳다. 그런데 수사 진행 상황 보고는 울산경찰청 수사과에서 경찰청 수사국으로 실무자들이 올리는 수준이었다. 그 보고가 설령 청와대에 전달됐다 한들 얼마나 은밀한 범죄행각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김기현 전 시장이 측근 비리 수사 때문에 낙선했다는 주장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울산 지역에서는 시장은 물론 5곳의 구청장·군수 선거에서 모두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광역의회도 비례대표 의원을 포함해 전체 22석 가운데 17석을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했고 자유한국당은 5석에 그쳤다. 당시 민심이 이미 자유한국당에서 떠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김 전 시장이 측근 비리 수사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며 선거무효 소송을 내겠다고 하는 것은 소가 웃을 노릇이다.
검찰 정상화의 요체는 각 수사기관끼리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다. 공수처 설치 등도 수사기관 상호 관계의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검찰의 비위 혐의 수사를 위해 다른 수사기관이 검찰청을 압수수색을 할 수도 있어야 정상적인 나라다. 만약 검찰의 이번 수사와 관련해 검찰청을 압수수색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누가 ‘하명’했는지부터 시작해 경천동지할 내용이 숱하게 쏟아져 나올 수 있다.
검찰은 조국 전 장관 수사 착수 때부터 이미 작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내년 총선 때까지 청와대를 향한 총공세를 질기게 이어갈 것이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도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고, 울산 사건에 대한 수사도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심각한 상처를 입고, 여권 전체가 선거를 앞두고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지금 검찰은 자기 권력의 축소에 대항해 결사항전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선거개입 혐의 수사를 빌미로 검찰이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참으로 역설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은 이런 비판에 대해 “혐의가 있으니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묻는다. “수사기관이 가장 강력한 공권력인 수사를 통해 선거를 앞둔 특정 정치세력을 공격하는 것은 범죄에 가까운 수사권 남용이며 선거개입 행위이다.” 이 말이 경찰에만 해당되고 검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검찰은 계속 우길 것인가. ‘검로경불’의 허구성에 이제 국민이 눈을 돌려야 할 때다.
김종구 ㅣ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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