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미르 돈낸 건 면세점 때문”
다른 기업 달리 그룹 아니라
롯데면세점 이름으로 28억원 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 앞둔 시점
돈 내고도 1, 2차 모두 탈락
예상에 없던 3차에서 기사회생?
검찰, 대가성 여부 추가 수사중
면세점 사업 ‘황금알 낳는 거위’
롯데, 업계 점유율 60% 강자
3자뇌물수수 혐의 핵심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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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한 백화점 면세점 매장을 중국인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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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롯데 면세사업자 선정 의혹
롯데그룹은 삼성 현대차와 달리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주도한 미르재단에 면세점 명의로 출연금을 냈습니다. 롯데그룹은 작은 계열사인 면세점을 왜 앞세웠을까요? 면세점 업계의 60%를 점유해온 롯데는 지난해 1차, 2차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서 모두 떨어졌지만 예정에 없던 3차 시기에 기사회생할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검찰은 여기에 대가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입니다. 롯데면세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3자 뇌물수수 혐의의 핵심고리인 셈입니다.
서울 강남구 학동로 규우빌딩. 이곳은 박근혜 대통령 사저와 500미터,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집에선 1300미터 떨어져 있다. 지난해 10월27일 이 건물 3층에 입주한 미르재단은 현판식을 한다. 신청 하루 만에 설립허가를 받아낸 재단의 현판식은 나중에 드러난 재단의 위상에 비하면 조촐한 편이었다. 재단의 임원진과 몇몇 기업의 임원이 참석했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인물 중 하나는 이홍균 롯데면세점 대표이사였다. 당시 미르에 돈을 내겠다고 약정한 대기업들 가운데 참석자는 삼성·현대차·에스케이·엘지·롯데 등 5대 그룹의 임원들이었다. 이 중 롯데면세점 대표이사의 참석은 의혹의 시작이었다. 최근 롯데 고위 임원 ㄱ씨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한 전화통화에서 “미르에 돈을 낸 건 다 면세점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송 의원 쪽은 ‘왜 미르재단에 돈을 냈냐’라는 의문 섞인 질문에 대한 해당 임원의 답이었다고 2일 <한겨레>에 밝혔다.
미르재단 현판식 간 롯데면세점 대표
롯데의 미르재단 출연은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서도 수상쩍다. 삼성은 여러 계열사 명의로 돈을 내지만, 나머지 다른 기업들은 대부분 그룹명으로 돈을 냈다. 그런데 유독 롯데는 롯데호텔 사업부 중 하나인 롯데면세점 이름으로 28억원을 낸다. 이는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정책본부에서 롯데면세점이 미르 출연금을 몽땅 내도록 조정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룹에서 매출액 기준으로 가장 큰 건 롯데쇼핑이다. 호텔사업부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면세점사업부가 롯데를 대표한 격이었다. 롯데가 어차피 청와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로부터 할당받은 돈을 내는 판에, 면세점을 앞세워 낸 걸 당시 계열사 중 면세점 재무 사정이 좀 나았다거나 우연히 그렇게 됐을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롯데면세점이 미르에 출연 약정한 지난해 10월26일은 관세청의 2차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앞둔 시점이었다. 지난해 7월10일 가칭 ‘1차 면세점 사업자’(보세판매장 신규사업자) 선정이 있은 지 석달이 지났을 때이기도 하다. 1차에선 한화와 에이치디시(HDC)신라가 사업자로 선정됐다. 고배를 마신 롯데면세점으로선 11월14일에 있었던 ‘2차 사업자’ 선정에 사활을 걸었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선 미르가 면세점으로 가는 로비 창구 하나로 인식됐다. 롯데의 또다른 고위 관계자 ㄴ씨는 송영길 의원 쪽에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미르재단 관계자가 면세점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알고 협조를 안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르재단 관계자’가 누군지는 특정하지 않았다.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직접적 고리는 아직까지 희미하다. 다만 <한겨레>가 송영길 의원실을 통해서 입수한 1, 2차 면세점 사업자 심사위원(특허심사위원) 명단을 보면, 일부나마 단서가 나온다. 당시 민간위원으로 참여한 김아무개 교수는 미르재단 한 임원과 같은 대학원 선후배였다. 두 사람은 공동으로 책을 펴내거나 세미나에 동반 참석할 만큼 친분이 두터웠다. 사실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미르재단 관계자’는 재단의 임원이 아닌 임원을 앉힌 그 윗선일 수도 있다. 미르재단 설립과 출연금 모금뿐만 아니라, 재단에 출연금을 낸 대기업들로부터 민원을 수렴하는 과정에 박근혜 대통령을 정점으로 최순실씨와 안종범 경제수석이 깊숙이 개입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 ㄴ씨와 ㄱ씨의 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면세점 사업자 선정이라는 대가를 바라고 롯데면세점이 미르재단에 출연했다는 의혹을 키우기 때문이다. ㄴ씨의 말은 불이익을 받을까봐 ‘보험용’으로 돈을 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재단 쪽이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 영향력을 끼칠 것을 기대하고서 출연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롯데로선 이런 의혹을 피해갈 구멍이 크다. 결과적으로 롯데가 2차 사업자로 선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롯데는 1, 2차 사업에서 연달아 탈락했다. 그 책임을 지고 이홍균 사장이 물러났다. 2차에선 신세계와 두산이 선정됐다. 2차 심사 이전부터 온갖 공을 들인 롯데로선 치명적인 결과였다. 이 때문에 롯데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로비를 했다면 어떻게 1차 때 한화에 밀리고, 2차 때는 27년 동안 운영해온 월드타워점의 면허를 면세점 경험조차 전혀 없는 두산한테 빼앗길 수 있었겠냐?”고 반문했다.
업계 절대강자, 롯데 면세점 선정서 탈락
하지만 반전을 꾀할 ‘수상한’ 기회가 금세 찾아왔다. 관세청은 갑작스럽게 ‘3차 면세사업자 선정’ 계획을 내놓는다. 3월4일 서울시내 면세점 8개사 대표이사와 한 간담회에서 뿌린 ‘보세판매장(면세점) 제도 운용 방향’이라는 공문을 통해서였다. 이 공문의 ‘특허 수 확대’ 항목엔 “향후 희망하는 기업이 면세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관광객 증가 등 여건 변화를 감안해 적정 수준의 면세점을 추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업계에선 이를 1, 2차에서 떨어진 롯데와 에스케이를 챙겨주기 위한 것으로 봤다. 1, 2차 선정 기업들의 반발도 거셌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같은 달 면세점 승인 요건을 완화해줬다. 이에 관세청은 4월29일 대기업 3곳을 비롯해 면세점 사업자 4곳을 추가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6월3일 3차 시내 면세점 선정 공고를 낸다. 롯데 관계자는 “기재부가 지난해 면세점 제도 개선 티에프(TF)를 꾸려 논의를 해왔던 사안이다. 3월엔 경제관계장관회의까지 열어 서울시내 관광객 증가 추이 전망을 토대로 추가 면세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3차가) 왜 롯데와 에스케이를 위한 거라고 의혹을 갖고 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롯데는 청와대가 주축이 돼 추진했던 미르재단에 공을 들이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한겨레>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와 송영길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지난해 11월 이후 관세청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 현황(10월말 현재)을 보면, 10명이 한국면세점협회에 재취업했거나 할 예정인 것으로 파악됐다. 면세점협회는 롯데와 신라, 신세계 등 주요 면세점 업체들이 회원사로 가입한 사단법인이다. 정부 및 의회를 상대로 한 면세사업자들의 주요한 로비 통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협회는 롯데 출신이 회장을 독식할 만큼 롯데 쪽 입김이 세다. 이곳에 갑자기 관세청 출신들의 스카우트 행렬이 줄을 잇는다. 2014~2015년 협회에 간 관세청 출신이 다섯명에 불과한 걸 고려했을 때, 수요가 크게 폭발한 것이다. 올해 재취업(예정 포함)한 퇴직자 전체 가운데 무려 절반 이상이 면세점협회로 쏠렸다. 관세청 관계자는 “면세점협회에 취직한 퇴직자는 논란이 되고 있는 특허가 아니라 주로 면세점 운영과 관련된 인력”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형제의 난에 이어 지난 6월 대대적인 검찰 수사를 받았다. 구속기소 위기에서 벗어난 신동빈 회장은 안팎의 위기와 논란에도 불구하고 면세점 사업에 계속 힘을 집중할 태세다. 우리나라 전체 면세사업 중 롯데 점유율은 거의 60%에 이른다. 롯데가 1~2차 선정 때 탈락하면서 절대 강자 지위에 금이 갈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법하다. 면세점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관세청이 송영길 의원한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서 지난 10월말까지 누적 매출액이 10조505억원에 이른다. 연말 12조원 시장으로 규모가 커질 전망이다. 2010년의 4조5260억원에서 6년 만에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면세점 사업은 허가 사업이다. 사업자로 선정되면 정부에 특허수수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그 부담은 매출에 비해 턱없이 적다. 올해 10월까지 면세점 사업자들이 정부에 낸 특허수수료는 모두 46억원에 그친다.
지난달 검찰은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을 기소하면서, 롯데가 미르 및 케이스포츠 재단에 낸 출연금 및 케이스포츠에 추가로 냈다가 돌려받은 70억원의 대가성을 공소사실에 적시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보면 박근혜 대통령을 ‘주범’으로 최씨와 안 전 수석 등이 공범으로 기업들한테 권한을 남용해 돈을 뜯어낸 것이다. 롯데가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려 했던 것과 두 재단 출연 및 추가 지원 건에 대한 대가성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대가성 없다던 검찰, 수사 모드로 전환
하지만 안심은 잠시였다. 검찰은 지난달 24일 롯데와 에스케이, 관세청, 기재부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3차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을 겨냥하고 있다. 즉, 롯데와 에스케이가 두 재단에 돈을 뜯긴 게 아니라 대가를 바라고서 한 거래였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3차 사업의 대가성 여부는 아직 결판나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한 수사 결과에 따라서 박 대통령을 비롯해 최씨와 안 전 수석 등 3명에겐 뇌물수수 혐의가 추가되고, 롯데 등은 뇌물공여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검찰 수사가 미완으로 끝나더라도, 박영수 특검이 롯데와 에스케이를 기다리고 있다. 수사를 받고 있는 롯데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롯데 관계자는 “2차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월드타워점 1300명 직원이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다. 국내 1위이자 글로벌 3위까지 갔던 롯데면세점이 의혹 때문에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3차 추가 사업자 선정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을 둘러싼 잡음이 계속 불거져왔다. 지난해 7월 1차 선정 과정에선 관세청 직원 6~7명이 결과 발표 직전에 관련 주식을 사서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는 이들이 심사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외부에 알리거나, 심사 이전부터 어떻게 결론이 날지 어느 정도 윤곽을 잡고서 주식을 사들였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에 관세청은 “사전유출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 면세점 업무를 계속 담당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돼 관련자들을 면세점 업무에서 즉시 배제”했다고 밝혔으나, 사실은 조금 다르다. <한겨레>가 송영길 의원한테서 받은 1~3차 특허심사 담당자 명단을 보면, 1차 때 담당자 4명 가운데 2명이 배제되지 않은 채 2차 심사 때 그대로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1차 때 심사 지원 직원이 3차 때 특허 심사 담당자로 간 것으로 확인됐다. 1차 심사 결과 사전유출 의혹 사건은 금융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현재 검찰로 넘어간 상태다.
심사위원 선정 과정에 대한 의문도 불거지고 있다. 관세청은 1000명의 민간 후보군을 두고 심사위원회 개최 3일 전 무작위 선별시스템으로 위원을 선정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2차 심사위원 9명 중엔 특정 대학의 같은 단과대 교수 2명이 선발됐다. 1차 때는 롯데호텔 출신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제주신라면세점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시민사회단체 임원이 심사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9월부터 줄곧 이 문제를 제기해온 송영길 의원은 “3차 면세점 사업자 선정은, 1~2차 탈락 기업인 롯데와 에스케이에 대한 보은 성격이 짙다. 공정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3차 사업자 선정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세청은 예정대로 이달 중순께 3차 사업자 선정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관세청은 1일 낸 보도자료에서 “일부 특허신청 업체가 불법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가 진행중이라고 특허심사 자체를 연기·취소할 경우 준비를 해온 다른 업체들에 적지 않은 경제적 피해가 예견된다”고 밝혔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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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27일 열린 미르재단 현판식 후 기념촬영 장면. 이날 행사에는 이홍균 롯데면세점 대표(뒷줄 오른쪽 둘째)도 참석했다. 전경련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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